토지정의

비노바 바베의 '부단'운동

강산21 2006. 7. 5. 22:25

비노바 바베의 '부단' 운동


박창수


출처: 「공동선」, 2006년 7·8월호.


비노바 바베. 그는 간디의 제자이자 동료였다. 감옥 안에서 물레 젓는 간디의 사진은 유명한데, 이 물레 젓기는 영국산 의류에 의해 인도의 전통 의류 산업이 몰락하는 문제의 대안으로 원래 비노바가 처음 시작하여 간디에게 전수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비노바가 진정 위대한 것은, ‘아쉬람’(공동체)을 세워 몸소 노동하고 실험하면서, 지주들의 사랑에 호소하여 땅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 주도록 하는, 혁명과 같은 ‘부단’(토지헌납) 운동을 20년간이나 실행했다는 점이다. 비노바는 지주들에게, 땅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소유한 땅의 육분의 일을 나눠주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인도 토지의 총면적 3억 에이커의 육분의 일인 5천만 에이커의 자발적 분배를 목표로 하였는데, 그에게 감동을 받아, 지주들은 결국 400만 에이커의 땅을 자! 발적으로 기부하였다. 비노바는 지주의 사랑에 호소할 것을 언급하면서 인간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준다.


“한 집을 예로 들어봅시다. 당신은 그 집에 들어가고자 하나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당신이 벽을 뚫고 들어가려고 머리를 부딪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머리만 깨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작은 문 하나를 발견하다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고 또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문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주를 만나보면 그는 많은 결함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기심은 마치 벽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은 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작은 선함이 그것입니다. 당신은 그 문을 찾으려고 준비하면서 당신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든 개의치 말고 문 찾으십시오. 가끔 나도 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결함은 내가 그의 단점들에 대항해서 내 머리를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칼린디 저, 김문호 역, 『비노바 바베』, (주)실천문학, 2002, 23-24쪽).


비노바가 부단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하리잔’(불가촉 천민)의 토지 문제 때문이었다. 1948년 4월, 비노바는 난민들의 재정착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서파키스탄 출신들 가운데에는 하리잔들이 많았다. 그들은 땅을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그에 대해 펀잡 정부는 처음에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주겠다고 공표하였다가 두 달 후 그것을 번복해 버렸다. 하리잔들은 몹시 낙담하였다. 이 사실을 알고 비노바는 땅 없는 사람들에게 땅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로 마음속 깊이 결심하게 된 것이다. 비노바는 힌두교적 배경을 가진 범신론자로서, ‘하느님’과의 만남과 대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비노바는 이런 명상에서 나오는 힘으로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부단 운동을 실행하였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비노바에게 와서 땅을 헌납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는 신문에서 비노바가 맨발로 걷는 사진 한 장을 보았는데, 그 사진을 보고 그녀는 비노바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그처럼 어렵고 험한 길을 걷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땅 헌납을 거절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비노바의 헌신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서 자발적으로 땅을 나누어 주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비노바는 토지헌납운동을 ‘야즈나’(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비노바는 만일 땅을 내놓는 지주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선심 쓰듯 호의나 베푸는 듯이 생각하면서 헌납하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지주의 ‘부단’ 실천은 시혜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공의(公義)였다.


“모든 인간은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한 개인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땅을 차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땅을 내놓을 때는 그 스스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놓아야 한다.”(같은 책, 240쪽).


이를 위해 비노바는 자신이 사명이 삼중적 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삼중적 변화는 바로 마음의 변화, 개인 생활 습관의 변화, 그리고 사회구조의 변화였는데, 비노바는 마음의 변화는 생활 습관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비노바는 자선은 사회를 일정 정도 유익하게 만들지만, 자선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자선이 불행을 경감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불행의 근원을 깨뜨리지 못한다고 통찰하였다.


비노바는 그람단(마을 토지의 공동소유)을 주장하였다. 당시에 파키스탄에서 넘어오는 이주민의 ‘침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비노바는 그람단을 주장하게 되었다.


“만일 모든 땅을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땅을 사고 파는 일이 없다면 그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땅을 사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땅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상의 해결책이었다. 그렇게 되면 경계지역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철조망을 만든다든지, 벽을 세운다든지, 무장경찰을 배치한다든지, 군인을 모병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람단만이 해결책이라고 거듭거듭 이야기하였다. 땅은 모두 ‘그림사바’, 즉 마을회가 소유하고, 누구도 땅을 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부인이 들어와도 땅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아예 정착을 생각할 수도 없을 게 아닌가.”(같은 책, 309~310쪽).


비노바는 일 년 간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람단이 인간의 사회적 본능들과는 완전히 일치하지만, 인간의 자기 보존 본능과는 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두 가지 본능을 모두 다 만족시켜 주기 위해 ‘슬라브(쉬운) 그람단’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각 지주가 토지의 이십 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놓고, 모든 땅의 법적 소유권은 마을 공동체에 귀속시키되, 이전의 지주는 원래 가지고 있던 땅의 나머지 이십 분의 십구를 계속 경작하며, 지주 본인의 동의가 없이는 경작권을 박탈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비노바의 그람단과 슬라브 그람단 주장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람단이 정착을 원하는 파키스탄 이주민을 배척하게 되는 문제이다. 이것은 명백히 옳지 않다. 둘째, 그람단이 토지 공동 소유와 매매 금지라는 원칙만 있지, 부의 생산과 분배라는 매우 중요한 경제 현상 측면에서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람단이 공동생산-공동분배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비노바 자신도 인정했듯이 인간의 본능과 잘 맞지 않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자기가 생산한 만큼 그 노동의 열매를 분배받지 못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게 되면, 주민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노동 생산물에 의지하려고 하게 되어 마을 전체의 생산성은 감소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 만약 그람단이 토지를 경작하는 주민이 자기가 생산한 만큼 그 노동의 열매를 갖! 게 되는 제도라고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땅에는 기름진 땅이 있고 척박한 땅이 있으며, 또 마을의 중심지와 도로에 가까워서 위치가 좋은 땅이 있고 그렇지 못하고 변두리에 있어 위치가 나쁜 땅이 있는 등 천차만별인데, 사람들은 누구든지 좋은 땅을 원하지 나쁜 땅을 원하는 사람은 없는 현실에서, 그럼 누구에게 좋은 땅을 주며 또 누구에게 나쁜 땅을 주며, 그것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는 좋은 땅을 받는 주민을 보며, 나쁜 땅을 받게 되는 주민이 결코 수긍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의 합의가 불가능한 문제인 것이다.


슬라브 그람단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먼저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한 땅이 마을 지주들의 토지 중 이십 분의 일을 초과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토지가 인도 전체 토지의 육분의 일이기 때문에 지주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째 아들로 생각하고 땅을 주자고 주장한 비노바의 애초 정신대로 하자면, 지주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십 분의 일이 아니라 육 분의 일을 주도록 해야 맞다. 이 문제 외에도 더 본질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지주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땅의 나머지 땅에 대해 마을 주민의 경작권을 보장해 준다는 말이 바로 소출에 대한 수익권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생산한 만큼 분배받게 되어 생산성이 저하되는 문제는 피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는 좋은 땅을 받고 누구는 나쁜 땅을 받게 되는 문제, 즉 분배받는 토지! 의 위치와 비옥도에 따른 차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실현이라는 진정한 토지 공유 원칙과는 위배되어 그람단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결정적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이 점에서 비노바에게 아쉬움이 있다. 비노바는 간디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 톨스토이는 소설 『부활』에서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땅을 농민에게 나눠주는 장면에서 헨리 조지의 지대 공유제 대안을 명시적으로 언급한다. 그것은 바로 좋은 땅을 받는 사람은 그 만큼 많은 지대(地代)를 마을 공동체에 공동 기금으로 내고, 나쁜 땅을 받는 사람은 그 만큼 적은 지대를 공동 기금으로 내서, 그렇게 모아진 지대 기금으로 마을의 공공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나쁜 땅을 받든 좋은 땅을 받든 토지 분배에서 오는 손익이 사라지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생각하고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의 합의가 가능하고, 또 지대를 마을 공동체가 공유하기 때문에 평등한 토지권이라는 토지 공유 원칙을 지킬 수 있으며, 각 주민은 공동기금으로 납부해야 할 지대를 제외하고 자기가 생산한 만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이 향상된다. 요컨대 비노바의 그람단과 슬라브 그람단이 갖는 문제점을 헨리 조지의 지대 공유제가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강원도 태백 산골짜기에 있는 수도 공동체인 예수원의 설립자이자 헨리 조지 사상을 한국 교회와 사회에 소개하고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친 고(故) 대천덕 신부는, 구약성경의 ‘희년’(가난한 사람들이 토지를 회복하는 제 50년째 되는 해)을 강론하며, 오늘날 자원적 희년과 제도적 희년, 이 두 가지 실천이 모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자원적 희년이 바로 비노바가 주도한 부단 운동과 같은 것이고 제도적 희년이 바로 헨리 조지가 주창한 지대조세제 입법 운동과 같은 것이다.


필자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선언하신 말씀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임하셔서 한국과 전 세계의 가난한 자에게 희년을 전파하고 실천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기도와 노동과 공동체와 토지 정의 운동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청년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