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정의

절반의 성공, 8.31대책 그 후 1년

강산21 2006. 9. 5. 18:48

■ 절반의 성공, 8.31대책 그 후 1년(토지정의 논평)


절반의 성공, 8.31대책 그 후 1년



8.31부동산종합대책(이하 8.31대책)이 발표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1년 전, 8.31대책발표를 앞두고 8.31대책에 담길 정책과 관련해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던 것처럼, 1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보수 주류언론에서는 8.31대책이 실수요마저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건설경기 부진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했다는 진단인 셈이다. 참여정부의 생각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8.31대책이 비등하던 부동산 투기심리를 진정시켜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동일한 대책을 두고 이렇듯 평가가 상반되니 우리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토지정의>는 8.31대책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우리 국민이 8.31대책에 대해 품고 있는 의문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8.31대책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한다. 8.31대책을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8.31대책의 내용을 대강이나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1. 8.31대책은 어떤 내용들로 채워져 있나?


8.31대책은 부동산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택부문, 토지부문, 세제부문을 전부 포괄하고 있다.


먼저 주택부문에는 ▲실거래가 신고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거래투명성, ▲미니신도시 건설 및 강북 광역 개발 등을 수단으로 하는 주택공급확대, ▲공공택지 지역 내에서 분양되는 아파트에 대한 원가연동제와 채권입찰제, 전매제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부문 역할 확대 등이 주요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토지부문에는 취득요건 강화, 전매요건 강화, 기반시설부담금과 개발부담금 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개발이익 환수 등의 조치가 담겨 있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세금폭탄’이라고 집요하게 공격했던 세제부문에서는 보유단계에서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주택의 경우 공시가격 9억 원→6억 원,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 6억 원→3억 원)과 실효세율(2009년까지 종합부동산세 대상자에 대해 평균 실효세율을 0.89%로 인상)을 현실화했고, 양도단계에서 1가구 2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상향했으며 투기 우려 지역 내 비사업용토지에 대해서도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고 있다.


특기할 만 한 점은, 부동산의 보유와 처분 단계에서는 세 부담이 늘어나지만, 취득단계(거래세)에서는 세부담이 경감되도록 8.31대책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종합부동산세 과세대상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들의 재산세 부담은 급격히 늘지 않도록 배려한 점도 인상적이라 할 것이다. 참고로 금융부문에서는 투기지역 내에서 가구별 아파트담보대출을 제한함으로써 투기적 가수요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쌈짓돈으로 삼아 투기를 일삼는 것을 차단하려고 고심한 점이 눈에 띈다.


위에서 상세히 살펴본 것처럼 8·31대책은 부동산과 관련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조치들이 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 8.31대책의 성과와 한계


8.31대책의 공적은 무엇보다 보유세를 핵심으로 하는 부동산 세제(稅制)를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잠재우려고 노력한 데 있다. 물론 송파신도시로 상징되듯 공급확대론의 그림자가 8.31대책에 어둡게 드리워져 있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부동산 세제의 큰 틀을 지켜낸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는 지난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시작된 부동산 투기 광풍이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 때문임을 정부가 미흡하게나마 인식하고 적절히 대처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실효세율 1%(기실은 2009년에 가서야 0.89%)를 천명하고 이에 대한 시간표를 마련한 것은 눈에 띠는 대목이었지만, 과세대상이 지나치게 한정된 점과 실효세율을 번복하여 후퇴시킨 점은 안타까운 대목이었다. 투기적 가수요를 진정시키는 데 있어 보유세 만한 특효약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를 정책으로 실현한 것은 참여정부가 최초라는 점은 사실이다.  


또한 정부와 여당이 8.31 대책에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측면에서 세금과 쌍벽을 이루는 개발이익환수제(기반시설부담금 및 개발부담금)를 새롭게 정비하는 내용을 담은 점도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8.31대책이 들끓던 투기심리를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 부동산 가격 안정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비록 자신의 힘만으로는 모자라 3.30대책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강남불패’의 신화를 깨는 데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물론 여느 정책들과 마찬가지로 8.31대책도 적지 않은 한계를 내장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송파신도시 건설 및 현재 개발 중인 택지지구의 확대조치이다. 이는 정부와 여당이 ‘자칭’ 시장주의자라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설파했던 공급확대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결과라 할 것이다. 물론 수요에 비해 주택공급이 부족해서, 즉 실수요에 기인해서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당연히 주택공급을 늘리는 것이 맞지만, 투기적 가수요가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인 경우에는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및 차단을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제거하는 것이 정석이다.


익히 알다시피 근래 기승을 부렸던 주택 가격앙등은, 여러 실증적 통계가 증명하듯 단연 투기적 가수요가 원인이었다. 이처럼 주택 시장에 투기적 가수요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공급확대가 별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장래에 거품이 꺼지고 투기적 가수요가 사라지면 주택 가격은 공급과잉으로 인해 급락하기 마련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강도의 공급확대정책이 8.31대책에 포함된 것은, 정부와 여당이 주택가격이 결정되는 원리, 투기적 가수요와 실수요의 차이 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크다. 물론 공급확대론을 목 놓아 외쳤던 ‘자칭’ 시장주의자들과 보수언론의 역할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8·31대책의 중핵이라 할 세제부문도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보유세 현실화의 실질적 대상이라 할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은 한 줌도 되지 않고, 양도소득세 중과의 그물도 그리 촘촘하지는 못하며, 개발이익환수제도 기대치를 하회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8.31대책이 부동산 불로소득의 환수 및 차단에 명백한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8.31대책 안에는 소중한 성과와 명백한 한계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8.31대책 발표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부동산 시장이 분출을 일시 중단하고 있는 휴화산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차기 정부에 바란다.


참여정부가 역대정권이 취한 부동산 정책보다 진일보한 정책(거래 투명화, 보유세 강화, 개발이익환수장치의 정비 등)을 채택하고 추진하였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대성되었다고 할 8.31대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차기정부는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공(功)과 과(過)를 명확히 인식하고 공(功)은 계승, 발전시키고 과(過)는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토지정의>는 차기정부에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먼저, 차기 정부는 각종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는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들썩일 때마다 각종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투기세력의 내성만 강화시키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는 실패하곤 했다. 이는 마치 월남전 당시 전력(戰力)을 축차적(逐次的)으로 투입하여 게릴라들의 대응능력만 향상시킨 미국의 전술적 실패를 방불케 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들 중 우수한 것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런 정책들을 뒷받침할 패러다임의 부재에 기인한 바 크다. 쉽게 말해 부동산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함에 있어 바탕이 되어 줄 철학과 구체적 목표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희미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대증(對症)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시적 목표를 갖지 못한 채 집값에만 연연했던 것이다. 만약 참여정부가 부동산(특히 토지)이 그 특성상 공공재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사회 전체의 기여라는 인식을 가지고, 토지불로소득의 환수 및 차단을 목표로 하여 여러 효과적인 정책수단들(예컨대 패키지형 세제개혁이나 토지공공임대제 등)을 사용하였더라면 한국사회의 고질(痼疾)적인 부동산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전기(轉機)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기정부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곤경에 빠진 이유가 각종 부동산 정책을 뒷받침할 패러다임의 빈곤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아 새로운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 수립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토지정의>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차기 정부에 당부할 나머지 하나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설령 정부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해 부동산 정책을 운용한다 해도 부동산 시장이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우수했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들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데에는 저금리로 인한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도 한몫 했던 사실을 차기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의지와 정책 뿐 아니라 대내외적 경제여건 및 금리 등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대내외적 경제여건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반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 부동산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큰 데, 이렇게 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의견이 세(勢)를 얻어 부동산 정책을 수정하라는 압력이 거세진다.


이때 정부는 중심을 잡고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와 인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토지정의>는 차기정부가 <토지정의>의 충고를 미간(眉間)에 새겨 부동산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립하고, 그 바탕 위에서 흔들림 없이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토지정의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