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님 (소설가) | |||
외출했다 돌아온 아내가 전화통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전화를 끊었다 걸었다를 되풀이했다. ‘지갑’이 어떻고, ‘연락처’가 어떻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갑을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고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잃어버린 게 아니라 주운 것이었다. 경춘국도 변의 한 휴게소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발견했다고 한다. 지갑에는 얼마간의 돈과 신용카드 몇 장, 수첩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아내는 지갑 임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함에 적혀 있는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고, 어눌 하지만 “여보세요” 하는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알아듣기 힘든 한두 마디 목소리가 들리다가 곧 끊겼다.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당신의 지갑을 가지고 있다, 전해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는 화도 휴게소에 있다, 하고 수십 번 말해도 반응이 없었다. 알아듣기나 했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아내는 거기서 그만 포기하고 싶었지만, 두어 번 지갑을 잃어버렸던 그때의 답답한 심정을 떠올리며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고 마음을고쳐 먹었다. 다시 지갑을 뒤져 충청도 어느 도시에 사는 지갑 임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차 안에서도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내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얼마나답답해하겠느냐고, 어떻게든 안심을 시켜야겠는데 길이 없다고,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전화를 걸어 댄 것이라고 말했다. 지갑 임자의부모와 연락이 된 것은 그날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노인은 사정을 이야기하자 딸이 말할 줄 모르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통화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노인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일러주었다. 네 시간에 걸친 안절부절이 겨우 끝이 났다. 이튿날 아침일찍 지갑은 스물다섯 살의 얼굴이 예쁜, 그러나 말을 할 줄 모르는 주인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순간그녀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아내였다. 나는 아마도 지갑을 잃었다가 되찾은 그녀보다 지갑을 찾아 주려고 밤새 애를 쓴 아내가 훨씬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은 자주 말해졌지만 더 많이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움을 받는사람은 조금 행복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많이 행복하다. 그렇다면 고마워했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아내인지 모른다.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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