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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

강산21 2001. 4. 21. 02:19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준비하는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
만남이 소중하듯, 이별도 의미있게

김철영 기자 bitsongzigi@hanmail.net    

남한의금강산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바위들이 돋보이는 월출산, 그 아래 있는 병원까지는 꼬박 6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의부인되시는 분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셔서 조문(弔問)을 간 것입니다.

늘 그랬듯이 무슨 말로 유가족들을 위로할까 생각하기 위해영안실로 곧장 향하지 않고 병원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바라보이는 월출산의 기암괴석과 푸르러 가는 산의 빛깔에서 생명의 힘이 느껴지지만, 아내를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그 선배님의 허전한 마음과 엄마와 이별을 해야 하는 세 딸들의 슬픈 마음을 생각하니 푸르러 가는 그 산의 빛깔이 그리곱게 보이질 않았습니다.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슬픈 이별을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그 선배님은 부산의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해군 장교로 전라도 목포에서 군(軍) 생활을 하면서, 부인은 목포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둘이 만나가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결혼 후 두 사람은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무명 전도자의 길을 자청하고 25년의 세월을젊은이들과 함께 하면서, 일본에서, 미국에서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대학생 전도자들의 삶이그러하듯,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쳐들어(?) 오는 가난한 대학생들을 위해 없는 살림을 다 털어서 그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일을 밥먹듯이해오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 일을 해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위암 진단을 받고, 힘든 투병 생활을 수년 동안 해온것입니다. 그 분의 삶을 떠올리면서, 유산으로 남겨진 세 딸들과 외기러기가 되어버린 선배님에게 힘과 격려가 될 말을 더듬 어보았지만, 침묵외에는 할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영안실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하얀 국화꽃 향기처럼, 밝고 미소 띤 고인의 얼굴 사진이 제일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통스런 순간보다는 하늘나라에서의 평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국화 한 송이를 고인의 영정 앞에 놓아 드린 후 선배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고통도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뵐 날을 소망하면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먼 곳까지 내려와 줘서 고맙네."
그 선배님의 얼굴에서 아내를떠나보내는 허전함과 평안함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대학생이 된 두 딸들과 이제 중학생인 막내를 불러서 위로의 말을전했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과 희생적인 삶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렴."
세 딸들의 얼굴 표정에서도 슬픔이 묻어났지만,준비된 듯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인의 영정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그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픔이밀려왔습니다.

"투병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치료의 과정을 밟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별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네. 이별에 대해서 고인도딸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고, 선배님도 세 딸들에게 엄마가 안 계실 때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마음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준비를 시켰다고하더군."
"그래서 가족들이 슬픈 기색을 보이면서도, 담담한 표정이었군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인데, 시기만 다를 뿐아닌가.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언제나 준비하고 사는 게 필요할 것 같네."
"그것이 남아 있는 자에게나, 떠나는 자에게나 아픔을 덜 느끼게하는 길인 것 같네요."

간단한 음식을 들면서, 몇몇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에서일어섰습니다.

영안실을 나서면서, 그 선배님과 세 딸들이 고인이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칠 때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그 날을꿈꾸며, 더 밝게,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생에서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내세에서의 다시 만날 것을소망하면서, 더 진실하게, 더 사랑하며 내가 믿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만남과이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는 방법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벌써, 올해 두분의 선배님들의 부인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의 아내가 암으로 투병 중에 있습니다. 순서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혼란스런 모습보다는, 준비된 이별을 위해 늘 준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 봅니다. 왜냐하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게될지라도, 죽음을 준비한 사람의 삶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유산으로 남겨놓기 때문입니다.

이별이라는 슬픔과아픔 속에서도, 맑은 영혼으로 세상의 숲을 헤쳐 가는 사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후회 없는 인생의 종점을 빠져 나올 수 있는사람, 많은 재산은 못 남겨줘도 자식에게 깊은 사랑과 신앙을 유산(遺産)으로 물려주는 아빠, 아무리 일이 바빠도 아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다정한남편,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향기 나는 삶의 본을 보여준 따뜻한 이웃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인예식에 참석하는 것보다, 상가(喪家)집에 가는 것이 인생의 교훈을 더 많이 얻는다"는 성서의 말씀을떠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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