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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다운' 엄마

강산21 2001. 4. 6. 00:08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아기가 다운인 것 같네요.” 출산 직후 의사가 내던진 이 한마디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다. 불임센터를 다녀가면서 어렵게 가진 아이니 만큼 누구보다 똑똑한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보상받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낳은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대개의 남편들은 아내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기 마련이지만 남편은 달랐다. 아이를 맡아줄 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데려온후로도 남편은 아이를 보낼 만한 곳을 알아보러 다녔고 나와 아이는 작은 방에 처박혀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저주스러울 만큼 원망스러웠던그 아이가, 매일 어떻게 하면 같이 죽을까 고민하게 했던 그 아이가 가슴 저리게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내가 키우겠다고 매달렸고너무나 열악한 시설에 절망한 남편은 아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냉담 속에서도 특수교육과 물리치료를 받으며 우리 동현이는이제 30개월을 맞았다. 아직 걷지도 못하고 신변처리도 전혀 못하지만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모른다.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주물러주고, 엄마가 울면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아이이다.
언젠가 친정엄마는 밤낮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동현이를 보고 “애낳은 거 후회되지?” 하셨다. 나는 단호히 “아니. 애 없는 사람들이 불쌍해”라고 말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동현이를 통해 얻은 것이 너무많았기 때문이다. 동현이를 통해 아직 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한지,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가진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의 큰 축복이다.설상가상으로 작년엔 남편이 큰 빚을 지고 실직까지 한데다 둘째 아이 유산까지 겹쳐 또 한번의 시련을 겪어야 했지만 그 시련 속에서 나를 지켜준건 동현이의 티없는 웃음이었다.
내 인생은 언제나 내가 기도한 것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하느님은 시련 속에서 더 깊어지는 나를이루어내셨다.

윤여진
결혼 전 잡지사 기자와 케이블 방송국 구성작가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서울 신내동에서 작은 옷가게를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육아사이트 'babywell.com'에 동현이의 욱아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월간 샘터2001.4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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