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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어린 라면을 먹은 자만이 인생을 안다

강산21 2001. 4. 11. 00:05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나는 라면 한 개가 15원 하던 때부터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 홀어머니 밑에서자라던 우리 삼 남매. 어머니와 형은 노점상에서 해삼, 멍게를 팔았다. 누나는 낮에는 공장을 다녔고, 저녁에는 야간 상고에서 공부를 했다.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홀로 저녁을 먹기 마련. 주황색 포장지를 뜯고 연탄불에 올려진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라면을 넣으면자장면을 기다릴 때 못지 않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느 날이었던가 동네에 몇 안되는 TV가 보고 싶어 친구네 집에 갔었다. 하지만 그친구 녀석은 얼마 전 나와 싸웠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던지, 다른 아이들은 다 들여보내면서도 나에게는 그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집에돌아온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그 라면을 먹으면서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없는 집, 저녁이 되면 물통을 짊어지고 어머님의 ‘구루마’에 배달을 해야 했고, 때때로 막걸리를 사다주고, 조명으로 쓰이는 ‘카바이트’를갖다주느라 아이들과 마음껏 뛰놀지도 못했던 그 서러움까지 한꺼번에 밀려와서였다.
이제 TV쯤은 한 달에 한 대라도 살 수 있고, 라면은언제든 몇 박스라도 살 수 있게 됐지만 나는 지금도 라면을 다섯 개 이상 사다 놓질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왠지 박스로 사다 놓으면라면을 우습게 취급하는 것 같은 미안함이 들기 때문이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 땅의 노동자 가운데 50%는 월 20만 원이 안되는월급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를 나오고 구미공단, 구로공단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일하던그녀들의 한 달 식비는 2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닭장 같은 방에서 구공탄 위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은 ‘생존의 영양식’이었다. 권투선수를꿈꾸며 계란 하나 풀어먹는 것에도 기쁨을 느꼈던 이웃집 ‘보이’ 형에게는 ‘희망의 만나’였을 것이다.
누군들 라면에 얽힌 추억이 없으랴.서양 친구들이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교훈을 언급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자. “눈물 어린 라면을 먹은자만이 인생을 알 수 있다”고….

김남필 / 월간 샘터 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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