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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로비

강산21 2001. 4. 4. 15:04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독일에서 학위 논문을 끝내고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산에서 학술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었다.고향이란 게 참 미묘한 것이라서, 특히 외국에서 익숙하지 못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면 언제나 기다렸다는 듯이 향수가 고개를 내밀곤 했다.세미나를 서둘러 끝내고서 나는 부리나케 자갈치 시장부터 찾았다.
‘귀향 국밥집’의 슬레이트 지붕은 곰처럼 녹슬어 있긴 했지만, 아직도정다웠다.
“아이고~, 우리 호성이 아이가. 니가 여어는 우짠 일고?”
국밥집 아줌마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나를 대뜸알아보고는, 반가움에 떨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무 어른스레 변한 탓인지 조촘거리는 듯했다.
“아주머니, 절알아보시겠어요?”
“하모. 니 할무이한테서도 말 많이 들었대이. 박사 따러 외국까지 나갔다문서, 인자 박사 댔나?”
아줌마는달라진 게 없었다. 국밥이 속달우편처럼 날아왔다. 오랜만이었다.
시장은 내 어린 시절 무지개 뜨는 고향이었다. 나에게도 참으로 배고파죽을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아! 나는 전쟁의 탯줄을 끊고 바로 이 자갈치 시장 건너편에 고아처럼 드러누워 있는 저 영도에서 태어나고자라지 않았던가. 더 이상 내몰릴 길 없는 피난민들이 마지막 보따리를 움켜잡고 주저앉아 서로 으르렁거리던 성난 도시의 마지막 끝이 바로영도였다. 날품팔이, 소매치기, 살인자, 난봉꾼, 사기꾼, 밀수꾼, 치기배, 공갈배, 정상배, 모리배, 양공주, 양키 등등이 비빔밥처럼 얽혀진흙구덩이 속에서 난투극을 벌이던 곳. 벌건 대낮에 생선회칼을 휘두르는 용감무쌍한 백의민족의 후예들이 길을 피로 낭자하게 물들이며 꽃잎처럼스러져가는 광경도 흔한 일이었다.
나도 뒤질 새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담배부터 배웠다.
6·25 직후, 그것도 온 나라의온갖 피난민들이 온통 고향 찾기 전국총회라도 열듯이 총집결해 있는 부산하고도 영도에서 살았으니, 먹을 게 귀했음은 시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나는 오그라든 배를 움켜쥐고 동무들과 산자락에 올라 무밭이나 고구마 밭을 점잖게 털었다. 그리고서는 피로회복 차원에서 길에서 주운 담배꽁초를 불붙여 입에 터억허니 물고는 심각하게 인상까지 써가며 담배 연기를 그윽이 내뿜기도 했다.
그래도 배가 고팠다.
그러면 동무들과바닷가로 내려갔다. 전쟁 때 부서진 무지막지한 철선들이 죄다 영도 앞 바다로 끌려온 듯했다. 비록 폐선에서 녹아내린 시커먼 기름이 온 바다를검은 담요처럼 컴컴하게 뒤덮긴 했지만, 그 든든한 쇠붙이에는 홍합이 흥건히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들이 우리의 주 공격목표였던 것이다. 우리의 온몸이 검은 기름으로 뒤범벅되긴 했지만, 그 홍합은 우리를 환생시키는 듯했다.
물론 자갈치 시장이 빠질 순 없었다. 바로 이 자갈치시장에서 할머니가 환갑이 넘도록 미역 장사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버젓이 가게를 차려놓고 장사하실 형편은 물론 아니었다. 할머니는 요컨대 무허가장사꾼이셨던 것이다. 도시락 만하게 묶은 미역들을 너른 양철대야 속에 담아놓고는 여러 아줌마들과 함께 빙 둘러앉아서 그걸 하나씩 파셨다.
거기서 얻어먹는 국밥이 왜 그리도 푸짐하고 환장할 맛이었던지. 나는 점심시간에 맞춰 곧잘 자갈치 시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출몰하면할머니는 미역 통을 옆 아줌마에게 맡기고는, 내 손을 붙들고 흰 머리털을 나부끼시며 손수 바로 이 ‘귀향 국밥집’으로 오시곤 했다. “이 놈이바로 내 손주요, 고기나 한 점 더 얹어주시오” 하며 간곡히 부탁하시는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나는 자주 엿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의 로비였던것이다. 비계가 자욱히 깔린 돼지고기 국밥이라니, 그 얼마나 환상적인 밥상이었던가! 허나 내가 가슴 그득히 먹고 밖으로 나올 때쯤이면, 할머니는이미 동지들과 함께 도주하신 지 오래였다. 벌써 ‘호각’이 출동한 것이다. 할머니는 소위 불법적으로 판을 벌이는, 비 제도권 장사꾼이셨던것이다. 호각을 불어젖히는 단속반원들이 얼마나 위대해 보였던지! 나도 얼른 커서 저 ‘호각’이 되고 싶었다.
헌데 나는 바로 거기서 나의또 다른 형제들을 발견했다. 비록 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내 할머니도 그 속에 버젓이 끼어 함께 튀셨으니,어찌 그들이 내 가족이 아니었겠는가.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로, <평등록> <인간적인 것과의재회> <뺑소니 정치와 3생정치> 등을 펴냈습니다. 지금 캐나다 밴쿠버 대학 객원교수로 있습니다.월간 샘터 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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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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