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글 좋은글

뒤축이 다 헤진 신발

강산21 2001. 3. 28. 00:07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오늘 바닷가를거닐다가 우연히 ‘털신발’같은 자그만 돌 하나를 주웠다. 사람의 발로 치자면 오른쪽 신발이 된다. 돌 신발의 밑창은 회색 빛 테두리를 둘렀고,가운데는 검정색이다. 맨 위는 다시 흰색 테를 둘렀다. 그렇다고 ‘수석’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오석’쯤 되는 돌도 아니다. 그저 흔하디 흔한화강암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언뜻 회상되는 것이 있어서 주워왔다. 보면 볼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닫게 하는 신발 모양의 ‘형상석’이었던것이다.
학창시절 긴 겨울방학이 끝나서 개학을 하면 나는 인천으로 공부하러 가야만 했다. 내가 인천 가는 날, 이른 새벽에 아버지는쇠죽을 쑬 겸 내가 자는 방에 군불을 때셨다. 군불을 때시면서 간밤에 땡땡 얼어붙은 내 검정 운동화를 아궁이에다 따끈따끈 데워 놓으셨다. 그당시 시골은 얼마나 춥던지 방에 떠다 놓은 자리끼가 꽁꽁 얼고 방 안의 물걸레가 동태가 되다시피 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먹을 쌀자루와 반찬을바지게를 뗀 지게에다 싣고서 앞장서셨다. 버스는 우리 집에서 가파른 비탈길 언덕배기에서 정차하였다. 젊디젊은 아들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서,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는 아버지 뒤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빙판 고갯길을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로 어정어정 짚으시면서올라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철이 없었는지…. 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훈훈하게 덥혀주신 새 운동화를 신었고 아버지는 밑창이 다 닳고 뒤축이다 해진 털신발을 신으셨다. 밑창이 뺀질뺀질 닳은 신발이니 얼마나 미끄러웠겠는가! 아버지가 신고 가시던 그런 털신발 같은 돌 하나를 주웠으니보면 볼수록 그때 아버지의 다 해진 신발 모습이 눈에 새록새록 밟힌다.
그렇게 철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던 아들 곁을, 아버지가 떠나신지도 어언 스물세 해! 육 남매 뒷바라지만 하시다가 먼저 가신 어머니가 그리우셨던지 부지런히 떠나셨다. 나도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싶고,온천욕도 해드리고 싶고, 따뜻한 털신발을 사드리고 싶다. 철이 나도 한참 늦게 났으니 목이 메어 오는 그리움만 남는다.
이 추운 겨울산자락에 누워 계신 아버지가 춥지 않으실런지…. 정영인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뒤축이 다 헤진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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