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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없이 살고싶은 욕심

강산21 2001. 3. 21. 00:17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끝에할 말을 먼저 하자.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세간살이라는 것은,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만 겨우 지니고 한 칸 방에서 이슬이나 피하며 그렇게살고 싶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있을수 있는 여러 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반드시 단순하게 살아야지만 내 인생의 목표인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는 보지않는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오두막에서 세간살이도 없이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강요한다면 큰 저택에서 호사스런 가구에 둘러싸여살겠다고 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둘 다 물질이나 정신에 얽매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자로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나가난하게 살겠다고 이를 악무는 것이나 결국은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많은 것을 갖추어 놓고서 자유롭게 사는길보다는 가진 것 없이 자유롭게 사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많은 것을 갖추어 놓고서 자유롭게 사는 것은 나 같은 정도의 실력으로는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캐딜락을 몰고 대저택에서 최고급 요리를 즐겼다는 오쇼 라즈니쉬쯤 되려면, 지금 내 형편으로는열 번 죽었다 살아나도 안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가진 것 없이 자유로워지기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고, 또 잘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있겠다는 자신감도 든다. 혹시 그것이 자신감을 위장한 착각일는지도 모를 일이나, 착각이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이 한바탕 꿈이라는데, 착각이라도쓸만한 착각이면 한번 빠져볼 만한 것 아니랴?

벌써 재작년 일이다. 마침 집 한 채 앉힐 만한 땅을 누가 준다기에 건축비 천만 원한도 안에서 집을 지어볼까 생각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모눈종이 위에 수없이 많은 설계도를 그리면서, 흙벽돌 값도 알아보고 목재 값도알아보고 오랜만에 지니게 될 ‘우리 집’을 꿈꾸며 몇날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이윽고 착공에 들어가기 전, 함께 일할 친구들과 마지막회합(?)을 가지기로 한 날 새벽, 동네 목욕탕엘 갔다.
더운물에 몸을 담그고 이따가 낮에 의논할 일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이것-집을 짓는일-이 내 생애 부려보는 마지막 욕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 마지막 욕심이다! 이것으로 마침내 더 바라는 것이 없는사람,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 어제도 내일도 없는 사람, 따라서 계획도 희망도 없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양희은의 노래에서처럼 한계령에부는 바람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내가 지상에서 부려보는 마지막 욕심이 되게 하자. 이렇게 한창 ‘마지막 욕심’이란 말에휘둘려 숨이 가쁜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가느다란 음성이 있었다.
“정말로 이번 일이 네가 부려보는 마지막 욕심이기를 바라느냐? 그렇다면‘지금’ 그것을 버려라. ‘지금’을 놓치면 네 ‘마지막 욕심’에서 평생토록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한마디 가느다란 목소리에 나는속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기쁨이라 할까, 후련함이라 할까. 아무튼 그 비슷한 느낌과 함께 자꾸만 웃음이 솟구쳤다.
‘지금’이다. 그렇다! ‘지금’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생존의 유일한 바탕임을 언제부터 내 입으로 말해왔던가? 욕심을 버린다면, 그것이마지막 욕심이든 첫 번째 욕심이든, 욕심을 버릴 때가 있다면 오직 ‘지금’이 있을 뿐이다.
내가 부려보는 마지막 욕심이기를 바라던집짓기를 포기하던 그날 새벽의 공중목욕탕은 내 생애에 있어서 아르키메데스의 목욕탕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목욕탕에서 발견한 수학 원리에너무나도 기뻐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쳐나왔다는데, 나도 벌거숭이 몸으로는 아니었지만 약간 과장해서 선열(禪悅)이라고 할 만한 기쁨과 홀가분함을안고 목욕탕 문을 나섰다. 그렇게 해서 내 소유가 될 뻔한 집 한 채는 주춧돌을 놓기도 전에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덕분에 요즘 아내와나는 계룡산 자락에서 아주 넓고 따뜻한 집에 살고 있다. 부지런한 집주인이 손수 정성스레 지은 집이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하다. 전에살던 집에 견주면 얼마나 호사스런 집인지 모른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감자 한 상자 들여놓고 먹을 공간이 없다는 점인데, 쌓아둘 곳이없음을 아쉬워하지 말고 쌓아두는 게 없이 살자고 아내에게 말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돌이켜 보면 참 오랜세월,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묶여 살아왔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버려지기는커녕 오히려 자꾸 쌓이는 것만 많아져서 애면글면괜히 속을 끓이고 발만 굴렀다. 그러나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누구든지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그것을 잡으려고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을 저절로놓게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성경에 보면, 진주 장수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사려고 전 재산을 팔아버리는 얘기가 나온다.그가 재산을 처분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것을 버림으로써 얻게 될 진주(보물)에 대한 생각으로 기쁨에 넘쳤으리라. 그렇다. 버리는 일 자체가어떤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한심한 코미디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것은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있다. 지금 모자가 있으니까 다른 모자를 사거나 만들지 않으면 된다(마하트마 간디). 그런데 그 간단한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모자가있는데도 새 모자를 또 사는 버릇이 내 몸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서다. 그러나, 아주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건강하고 행복하고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심이 무엇을 갖추고(소유하고) 싶은 욕심보다 조금 더 크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는 삶을살고 싶은 이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일 터인데, 이걸 과연 버려야 할 건지 말아야 할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이현주-죽변교회 등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목회자이자동화 작가입니다. 저서로 <바보 온달>등의 동화집과 <예수와 만난 사람들>, <대학 중용 읽기>등이있습니다. 샘터 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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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이 살고싶은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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