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글 좋은글

백번째 손님

강산21 2001. 3. 17. 11:54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국밥집 주인 강씨아저씨는 손님을 기다리며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이정해져 있는 직장의 손님들이 한 차례 지나간 뒤였습니다. 그러나,아직 때늦은 점심을 찾는 손님이 몇은 더 있음직한 무렵이었습니다.그때 문이 벌름히 열렸습니다. 강씨 아저씨가 신문을 밀치며 벌떡일어섰습니다. 천천히 문이 열리면서, 머리카락이 허연 할머니가들어섰습니다. 그 뒤에 열 살도 채 안 돼 보이는 소년이 마치 꼬리를잡고 있듯 할머니의 한 손을 꼭 잡고 따라 들어왔습니다. 옷차림이남루하고, 얼굴에는 궁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 이쪽으로 앉으세요.

강씨 아저씨는가운데 식탁의 의자를 빼내놓으며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그러나할머니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머뭇거렸습니다.

- 저, 저어...쇠머리국밥 한 그릇에 얼마나 하는지..?

- 4천 원입니다.

강씨 아저씨는사람 좋은 웃음을 온 얼굴에 가득 담아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조금 몸을 돌려 허리춤에서 주머니를 꺼냈습니다. 그 주머니 안에든 동전까지 조몰락거리며 헤아려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자리에 소년을 앉히고, 할머니는 맞은쪽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 한 그릇만 주세요.

- 예?

- 난 점심을 이미먹었다오.

- 아, 예. 맛있게말아드리겠습니다.

강씨 아저씨는그들 앞에 물잔 둘을 놓고, 쪼르르 물을 따르며 말했습니다. 조금뒤, 강씨 아저씨는 깍두기 접시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어서 국밥한그릇을 할머니와 소년의 가운데에 놓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 아가야,어서많이 먹어라.

소년은 한 숟가락푹 떠서 입에 막 넣으려다가는 할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 할머니,정말점심 먹었어?

- 그럼, 배불리먹었다...너나 어서...어서 먹어라..

그제서야 소년은국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이 게걸스러이 먹는 동안 할머니는깍두기 하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고 있었습니다.소년은 국밥 한그룻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뚝배기를얼굴에 뒤집어쓰듯 하고서 마지막 국물 한 모금까지 후룩 마셨습니다.어느새 뚝배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서 혀로 입술을 핥았습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씨 아저씨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 오늘 참 운이좋으십니다. 할머니는 오늘 우리 집의 백 번째 손님입니다.

- 네? 뭐라고요?

할머니가 눈을동그랗게 뜨며 강씨 아저씨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슨 소린지 몰라불안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 우리 집에서는그날의 백 번째 손님께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작은 복권을 하나타신 셈이지요. 할머니는 긴가민가 하면서도 ‘웬 횡재냐?’는 기색을굳이 숨기지 않았습니다.

- 아니, 그게 정말인가요?

- 아,그럼요. 오늘은그냥 가시고, 다음에 또 오십시오.

한 손으로 돈주머니를꼭 쥔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주름살 속에 숨겨두었던 반색을 죄다드러내며 환히 웃었습니다. 문을 열어주며 할머니와 소년을 배웅하는강씨 아저씨는 그보다 더 밝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2개월쯤 뒤.할머니와 손자가 또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 들렀습니다. 그들을알아본 아저씨는 대뜸 “할머니는 참 복이 많으시군요”라며 반겼습니다.이번에도 백 번째 손님의 행운을 그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그로부터한 달 남짓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강씨 아저씨가 무심코 창 밖을내다보다가 길 건너쪽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낯익은 소년을발견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왔던 소년이었습니다. 한참 유심히살핀 뒤에야 소년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알아냈습니다. 강씨아저씨네 국밥집에 손님이 한 사람 들어올 적마다 돌맹이 하나씩을땅에 그린 동그라미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손님이 거의끊어진 뒤에 그 돌맹이를 헤아리고는 고개를 가웃거렸습니다. 기껏해야돌맹이는 50개도 안되었던 것입니다. 사흘째 내리 그 아이를 본강씨 아저씨는 아내를 보내 무슨 까닭인지 넌지시 알아보게 했습니다.한참 만에 돌아온 아내의 얼굴빛은 그리 밝지 못했습니다.

- 내일모레가 채할머니의 생신이래요.

할머니께 국밥을대접해드리고 싶으서 언제쯤 오면 백 번째 손님이 될 수 있는지를셈치고 있나 봐요. 이미 백 번째 손님에 대한 사연을 알고 있던그의 아내가 일러주었습니다.

- 아이고~ 이런....

강씨 아저씨의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나절 내내 이거 야단났네..를연발하던 강씨 아저씨가 무릎을 탁쳤습니다. 그러더니 전화기 앞에붙어 앉아 여기저지 전화를 걸어댔습니다.

- 과장님이세요?모레 점심 시간에 저희 집에 오십시오. 별일은 아니고요. 평소에도와주셔서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요. 친구분들하고 같이 오시면더 좋습니다.

- 여보게, 날세.모레 점심 시간에 우리 집에 오게. 무슨 날은 아니고.. 그냥 점심한끼 같이 먹고 싶어서.그래,  직원들도 함께 와.

강씨 아저씨는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수첩을 뒤적이며 한참 동안 전화를 걸었습니다.그래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강씨 아저씨네 국밥집 건너편 길에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혼자가아니고 할머니랑 같이였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 손님이한 사람 들어갈 적마다 동그라미 속에 돌맹이를 하나씩 넣었습니다.강씨 아저씨는 부인과 함께 가끔 창 밖으로 그 모습을 엿보았습니다.여느 날과 달리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였습니다.

- 할머니 어서일어서! 벌써 아흔아홉번째 손님이 들어갔어..!! 다음이 백 번째란말이야..

소년이 서툴러할머니 손을 잡고 끌었습니다.

- 할머니, 오늘은내가 할머니께 사드리는 거야.

소년은 할머니의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 그래.. 고맙다.

할머니는 더없이행복한 얼굴로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이 일어선 자리 옆에는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민들레가 철 늦게 피운 꽃 한 송이가 노랗게웃고 있었습니다. 그날, 진짜 백 번째 손님이 된 할머니는 또다시따뜻한 쇠머리국밥 한 그릇을 대접받었습니다. 식당 안을 그들먹하게메운 손님들은 아무 영문도 몰랐습니다. 아내가 강씨 아저씨의 귀에다대고 속삭였습니다.

- 여보, 저 아이에게도한 그릇 줍시다.

강씨 아저씨는고개를 저었습니다.

- 쉿, 그런 말말아요. 쟤는 오늘 안 먹어도 배가 부르는 법을 배우는 거라오.

그러면서 턱끝으로할머니와 아이 쪽을 가리켰습니다. 할머니는 천연덕스럽게 혼자서국밥을 후룩후룩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길은 할머니의숟가락을 따라 국밥 그룻에서 입으로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러다가몰래 침을 꼴짝 삼켰습니다.

- 너 정말 배 안고파? 좀 남겨줄까?

- 난 안 먹어.정말 배불러... 이 봐.

아이는 짐짓 배에바람을 가득 넣어 앞으로 쑥 내밀었습니다. 그러고는 깍두기 하나를손가락으로 집어 입에 날름 넣고 우직 씹었습니다. 전에 할머니가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강씨 아저씨와그 아내의 입 안에도 군침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참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씨 아저씨네 국밥집에는 사람들이몰려들어 정말로 백 번째 손님이 되어 국밥을 공짜로 먹는 사람이날마다 생겼습니다. 2백 번째 손님이 되어 같이 온 사람들까지 공짜국밥을 먹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백번째 손님

 



'따뜻한글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견이 더 큰 장애입니다  (0) 2001.03.23
욕심없이 살고싶은 욕심  (0) 2001.03.21
내 직업은 버스 운전기사  (0) 2001.03.15
아기(?)와 세발 자전거  (0) 2001.03.09
감동과 비탄의 이야기 하나씩  (0) 200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