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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일으켜 세우는 힘

강산21 2001. 2. 16. 00:14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절망을 일으켜 세우는힘

신지현 님 / 경북 영천시 오수동

‘삶 속엔 절망을 이겨낼 길도 있을까?’
잠든 아이들과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잠긴다.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는 전기 기술자인 남편은 IMF가 터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4남 2녀의 막내지만 넉넉지 못한 가세에자수성가한 남편에겐 계속되는 부도를 막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빚을 갚느라 살고 있던 집에서 거리로 나앉게 될 무렵 시어머니께서시댁 뒷밭을 내어 주셨다.

어쩌면 당연한 배려였을 테지만 난 시어머니께 고마워 무릎 꿇고 눈물만 흘렸다. 남편은 비만 오면 무릎까지빠지는 진흙밭을 메우고 다져 우리 세 식구 머물 조립식 집을 짓고 난 뒤 더욱 열심히 일을 찾는 등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애를 써 봐도 빚은 제자리였다. 남에게 십 원 하나 못 빌리는 남편은 큰아주버님께 간신히 담보대출을 부탁했고, 우리가 집을 지은 땅의 소유자로되어 있는 큰아주버님께서는 마지못해 응해 주셨다. 그러나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불행은 우리 곁으로 계속해 달려왔다. 공사현장에 있던 기술자의감전사고, 믿고 돈 한푼 받지 않고 일해 줬던 남편 선배의 줄행랑`….

천만 원의 담보대출과 적금대출 5백만 원은 천 9백만 원으로커져 버렸고, 나는 난생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하루 종일 냉동창고의 냉기 속에서 돈육을 포장해야 하는 육가공 회사에나갔다. 그러나 50여 만 원쯤 되는 월급으로 40만 원이 넘는 이자를 감당하고 생활을 꾸려 나가기엔 너무 벅찼다. 결국 이자가 연체되어은행에선 경매처리를 한다고 통고해 왔다. 게다가 큰아주버님은 술만 먹으면 찾아와 내 땅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손을 내밀어 잡아 줄 그누구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남편은 자폐증 환자처럼 말문을 닫고 벽만 바라보며 누워 버렸다. 그때 불현듯 몇 년 전 남편이 눈 수술을 하느라입원해 있던 병원 화장실 벽에 숱하게 붙어 있던 스티커들이 떠올랐다. ‘신장 팔 사람’, ‘신장 상담`…’ 더 이상 무슨 망설임이있으랴.

네 살바기 아들의 손을 잡고 대구 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그 곳에서 제일 가까운 병원의 화장실 벽에 쓰인 전화번호부터 베껴나갔다. 대여섯 시간 동안 세 곳의 종합병원 화장실을 돌았다. 아이는 지쳐서 “엄마, 이제 화장실 가지 마” 하며 울어댔지만, 난 울먹이는아이의 손목을 움켜잡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나서 식당에 들어가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아이에게 먹이며 전화를 했다.

“2천 5백만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수검자가 검사비 70만 원을 부담해야 합니다`….”
이 길이 아니면 우리 네 식구 죽는다고 생각한 나는 정신나간사람처럼 전화기에 매달려 “검사비는 나중에 신장 판 돈을 받고 드리면 안 됩니까? 나중에…”라고 필사적으로 물었지만, 수화기 저편에서는 모두똑같은 대답이었다.

호주머니에 당장 7천 원도 없는데 70만 원이라니, 아이의 입가를 닦아 주며 왜 그렇게 목이 메이던지….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사 준 삶은 옥수수 한 개가 하필 7백 원이라서 난 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은행 이사장님께 편지를 썼다.제발 살려 달라고….

다행히 그 분은 우리 부부를 불러, 없는 형편일수록 신용이 재산이 되어야 한다면서 다시금 선처를 해 주셨다.우린 어렵사리 구한 돈으로 밀린 이자와 법원 경비들을 갚았다.
그 즈음 피해망상증 환자로 변해 있던 남편이 급기야 의처증까지 보이는바람에 나는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피붙이에게 받는 모멸감으로 황폐하게 변해 버린 남편은 갖은 욕설에 심지어 폭력까지휘둘렀지만 나는 고스란히 감내했다. 내게 남편은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기에….

겨우 평정을 되찾은 남편을 달래 집 가까이있는 병원 식당에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식당 주방일이 처음인 내겐 버거운 일이지만, 남편 앞에선 내색조차 않고 불어터진 손을 감추며 일부러크게 웃는다. 잠든 척하고 누워 있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내 어깨를 주물러 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남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데 두 달치 이자를 못 낸 우리 앞에 얼마 전 법원 경고장이 또 날아왔다. 눈앞이 캄캄해져서 담당 은행직원을 찾아가 간절히사정했지만, 우리 네 식구의 터전은 다시 법원에 넘어갔고,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 놓여졌다. 하지만 아무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모두 우리가 잘못한 탓이니까.

남편은 이따금씩 밤에 몰래 일어나 아이들과 나의 오래된 신발들을 털고 닦아 손질하고 자기 신발들은하나씩 태운다. 그리고 잠이 든 나와 아이들의 얼굴을 차례로 쓸어 보기도 한다. 짐짓 잠든 척하며 남편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천길만길 낭떠러지로떨어진다. 아직도 남편은 세상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믿는다. 예전의 그 성실하고 든든한 모습그대로 남편이 곧 다시 일어설 것을 믿는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일으켜 세울 길이 어서 어서열리기를`…. <좋은 생각 2000.12>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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