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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짜장면

강산21 2001. 2. 14. 12:56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맛없는 짜장면

   나는 가끔씩 동창들을 만날 때 서울 종로에서 그 만남을 갖곤 합니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마음에  남는음식점이 있는데 그 음식점 이름까지는 좀 시간이 오래 지나선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그 종로의 한 중국집은 "맛이 없으면 돈을안 받는다."라는 문구가 있었던 음식점. 이 문구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 집에 어느 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아이가 왔다. 점심시간이 막 지나간 뒤라 식당에서는 청년 하나가 신문을 뒤적이며 볶음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 아이는 자장면 두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의 손은 험한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말 그대로 북두갈고리였다.
   아이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다. 할아버지는아이의 그릇에 자신의 몫을 덜어 옮겼다. 몇 젓가락 안 되는 자장면을 다 드신 할아버지는 입가에 자장을 묻혀가며 부지런히 먹는 손자를 대견하다는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이가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모양이었다. 손자가 하도 자장면을 먹고싶어해 모처럼 데리고 나온 길인 듯 했다.
   아이가 자장면을 반쯤 먹었을 때 주인이 주방쪽을 대고 말했다. "오늘 자장면 맛을 못봤네. 조금만 줘봐." 자장면 반 그릇이 금세 나왔다. 주인은 한 젓가락 입에 대더니 주방장을 불렀다. "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거 같지않나? 그리고 간도 잘 안 맞는 것 같애. 이래 가지고 손님들한테 돈을 받을 수 있겠나." 주방장을 들여보내고 주인은 아이가 막 식사를 끝낸탁자로 갔다.
   할아버지가 주인을 쳐다보자 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오늘 자장면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다음에 오시면 꼭 맛있는 자장면을 드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게는 맛이 없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다음에 꼭 다시들러주십시오."
   손자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나가던 할아버지가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주인이 다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고,고맙구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팔을 붙들려 나가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주인은 말없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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