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글 좋은글

세상에 둘도없는 따뜻한 목욕탕

강산21 2001. 2. 10. 02:27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입니다.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칼럼지기 드림

세상에 둘도없는 따뜻한 목욕탕-사랑의 목욕 봉사 펼치는 화순천주교회의'이동목욕봉사단'

다세대 주택의이층으로 통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 하얗고 길다란 욕조가 그 아슬아슬한 계단을 딛고 엉금엉금 기어올라간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욕조 뒤로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길다란 호스 두 개와 전선들…. 꽤나 생소한 광경일 법도 한데 구경꾼은 동네 꼬마 서넛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기이한 행렬은 4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계속되어 ‘호들갑스러운 볼거리’가 아닌 ‘소리 없는 일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전남화순천주교회 청년부에서 운영하는 ‘이동목욕봉사단’은 1996년 4월 결성된 이래 하루도 쉼 없이 목욕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왔다. 중증장애인,치매환자, 독거 노인들과 같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목욕도 시켜주고, 목욕물보다 더 따끈따끈한 온정을나누어주고 있다. 봉고차를 개조해 만든 조그마한 이동목욕차에 휴대용 욕조와 물탱크, 기름보일러를 갖추어 놓았고, 이 이동목욕차로 화순 읍내는물론 버스도 다니지 않는 깊숙한 산골까지 화순군 일대 구석구석을 누빈다. 현재 화순군 사회복지과나 보건소 등을 통해, 또는 개인적인 요청에 의해등록된 수혜 대상자만도 75명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사랑의 목욕 봉사 뒤에는 언제나 소리 없이 일하는 25명의 따뜻한 손을 가진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주부, 직장인, 고등학생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봉사자들은 두세 명씩 8개의 조를 짜서 매일매일 돌아가며 봉사활동을펼친다. 평일에는 주로 주부 봉사자들이 봉사를 하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직장을 다니는 남자 봉사자들이 길이 험한 산골마을에 들어가 봉사를 하고있다.


오늘의 목욕 봉사에는 목요일 오전 봉사조인 박석애(70), 조남순(65) 씨 조에 임화남(40) 씨까지 합세했다. 수혜 노인이사는 곳이 다세대 주택의 이층이어서 욕조를 운반하려면 다른 날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욕조를 이층까지 운반하고 호스를 연결해이동목욕차의 기름보일러로 데운 물을 끌어올렸다. 욕조에는 금세 따뜻한 물이 채워졌고 방안 가득 훈훈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목욕물에 손을넣어 온도를 맞추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목욕준비를 끝낸 봉사자들은 다리가 불편해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김모 할머니(95)를 조심스레 부축해나왔다. 쪼글쪼글 주름이 진 깡마른 몸이 뜨듯한 목욕물 속으로 들어가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세상에서 소외되어 쓸쓸하게살아가는 이들의 얼굴에서 이같이 소박한 행복의 빛이 찰랑일 때 봉사자들은 작은 보람을 느끼곤 한다. 수혜자들의 대부분이 기력이 없는 노인들이라목욕은 30분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재빠르게 진행되지만, 봉사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밀린 빨래며 집안 청소, 낡은 집과 가재도구수리 역시 봉사자들의 몫이다. 그런 이유로 하루 동안 돌볼 수 있는 노인들의 수가 겨우 두세 명에 불과해 아쉽다는 게 봉사자들의 말이지만, 그동안 돌봐드린 노인들만도 해마다 6백여 명씩, 지금까지 3천여 명에 이른다.
화순천주교회 ‘이동목욕봉사단’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사람이 있다.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기겁을 하며 싫어하는 주진택(39) 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주진택 씨는 ’96년 창단 때부터지금까지 4년이 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동목욕차를 운전해왔다. 교회 청년회에서 목욕자원봉사를 전담할 실무자를 찾자, 다니던 전자회사를 아예그만두고 지금껏 이 일에만 매달려온 것이다. 그 동안의 열성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1997년에는 같이 목욕봉사를 하던 참한 아가씨와 결혼식도올렸다. “저 놈이 봉사라도 하니까 결혼도 했지, 안 그랬으면 아직까지 결혼도 못했을 거라고들 그랬죠.” 주진택 씨가 웃으며 하는 말이다. 목욕봉사 덕분에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세상공부 많이 했다는 주진택 씨의 가슴속에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간직되어 있다. 할아버지가 없으면 목욕을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할머니의 얼굴도 생각나고, 치매에 걸려 문을 잠가버리던 할아버지도 기억난다.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생각하면마음이 짠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돌보는 이 없이 시골에 버려지다시피 한 노인들, 찾아가 보면 처마 밑은 스산한 거미줄로 뒤덮여 있고 마당에는똥덩이들이 구르고 있다. 목욕 봉사 하러 갔다가 쓰러져 있는 노인을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던 일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 오전에눈웃음 나누며 목욕시켜드린 노인의 부고를 그 다음날 들었을 때만큼 비통했던 때도 없었다. “직업이라 생각하자고 마음먹었죠. 이 일은 나의직업이고, 이동목욕차가 나의 직장이라구요. 봉사나 희생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해오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목욕 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가졌던 생각이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주진택 씨의 결심이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이동목욕봉사단’의 손길은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목욕물온도에도 더욱더 신경을 써야 하고, 보일러가 얼지 않도록 주의도 기울여야 한다. 대출을 받고 할부금을 갚아가며 마련한 이동목욕차도 이젠 낡았는지여기 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따뜻한 목욕물 한 바가지에 삶의 고달픔을 씻어 내릴 사람들을 생각하며 봉사자들은 올 겨울도 바지런히손발을 움직일 것이다. ●(샘터2000.12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