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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겪은 한 일화

강산21 2001. 2. 9. 00:44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이브새벽에겪은한일화 경비아저씨 토니의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겪은 한 일화

그날 밤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늦게까지파티를 한 사람이 집에 가기 위해 부른다고 생각했다.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경적을 한두 번 누르고가버렸겠지만 그날 밤 그는 일부러 차에서 내려서 벨을 눌렀다. “잠깐만요.” 아주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마룻바닥에질질 끌리는소리가 들렸다.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마치 19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나이든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이 가방 좀 들어주겠수?” 할머니는 아주 미안한표정으로 말했다. 방을 나오면서 할머니는 문간에 놓인 사진틀과 앨범이 가득 담겨 있는 상자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할머니 그것도가져가실 거예요?”
할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냥 두고 갈 테야.”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아.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있는 중이거든.”
순간 토니는 뒷좌석의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의 이슬이 반짝였다. “식구가 하나도 없어서. 의사선생님이 인제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우.”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다. “어떤 길로 갈까요, 할머니?”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걸로 일하던 빌딩, 지금은 가구공장이 되었지만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라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토니는 할머니가 준 주소로 차를몰았다.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맞아 휠체어에 앉혔고,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다.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를 두고 토니는 건물을 나왔고, 뒤로 문이 ‘찰칵’ 하고 닫혔다.
“그건 마치 삶과죽음 사이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어.” 토니는 말했다. “나는 그때 집으로 가지 않고 한참 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때 내가 그냥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날 당번이 걸려 심술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난 내 일생에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 거야.” (샘터2000.12에서 부분 옮김)

<따뜻한 세상만들기>는 작으나마마음을 나누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든 방입니다. 따뜻한 글을 싣고서로 좋은 글을 공유하며 자그마한 정성이라도 함께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이제 시작이고 함께 만들어 가는 열린 공간이길 소망합니다. - 칼럼지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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