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현실그대로

[스크랩] 조선일보 홍석준 기자의 만취 어록

강산21 2005. 7. 19. 16:13

아직도 여기까지 밖에 못 왔구나, 우리 사회가


지난 11일 밤 술 먹고 행패를 부렸던 조선일보 정치부 홍석준 기자. 그의 행위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는 경찰/검찰의 조치를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미덥지야 못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조선일보로서는 홍석준 기자를 처벌할 수 없을 겁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다들 먹는 술이고, 다들 부리는 행패인데, 홍석준 기자만 처벌하면 그가 매우 섭섭할 겁니다. “왜 나만 갖구 그래, 다 그러는데. 글구, 중견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조선일보에서는 그말도 맞을 겁니다. 김대중 고문이 아무리 기사로 행패를 부려도 벌받는 거 보셨어요? 몇만원 감봉에다가 며칠 정직 같은 장난 말고, 처벌 효과가 있는 진짜 처벌 말입니다. 웃물이 그런데 어떻게 아랫물을 기대하겠습니까?


조선일보가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의 언론 같으면 시민과 경찰에게 이런 행패를 부린 사람은, 기자 아니라 기자 할애비라도 제깍 해고입니다. 형사처벌은 물론이구요. 왜 그런 건 안 따라 하는지 몰라.

 

 

△ 조선일보 홍석준 기자가 코리아나호텔 직원을 눕혀놓고 때리고 (왼쪽) ‘낭심’을 걷어차는 것을 다른 직원이 말리고 있다(가운데). 남대문 경찰서로 온 홍 기자가 누워 발을 꼼지락 거리며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이 XX야”라고 말하고 있다. (오른쪽) ⓒ 오마이뉴스


피해자로서는 맞은 몸보다 멍든 마음이 더 아픈 법입니다. 홍석준 기자가 취중에 내뱉은 증오에 찬 악다구니들은 피해자와 경찰 뿐 아니라 전해들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팝니다. 총천연색 테크노칼러에 빛나는 홍석준의 만취 어록. 크게 세 가지더군요.


1. 너 몇 살이냐, 내 아들 뻘 되는 놈이 

2. 난 대통령 친구다 

3. 삐딱한, 전라도, 돼지 새끼


아들 뻘 되는 놈이


처음엔 택시 기사분이 젊은 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니까 마흔 세 살짜리 홍석준 기자에게 멱살 잡혀 끌려 나와서 따귀 맞고 낭심 채인 기사분 연세가 마흔 여섯이시더군요. 허허…. 마흔세 살짜리한테 마흔 여섯 먹은 아들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요?


혹시 그 택시 기사분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시는 분일까요? 인터뷰 동영상을 보니까 뭐 꼭 그렇지도 않으시더라구요. 10년째 택시 하신 분이다 보니 아무래도 얼굴에도 고생과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홍석준 기자가 살이 찌고 얼굴에 개기름이 흘러도 그렇지, 그런 기사분을 아들 뻘로 볼 상황은 전혀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이거 상대방 초기 제압 전술이잖습니까? 일단 큰 소리 치면서 (유사) 항렬로 눌러버리는 거지요. ‘지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이 지배하는 조선일보의 직원으로서는, 설사 상대가 자기 업무와는 아무 상관없는 택시 기사 분일지라도, 져서는 안되는 것인가 봅니다.


‘아들 뻘 되는 놈이…” 발언이 씁쓸한 또 한 가지 이유는, 모든 인간관계를 상하관계로 치환시키는 버릇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택시 기사와 신문기자는 그냥 평등한 수평관계일 뿐입니다. 택시기사는 돈 내고 신문 사서 볼 뿐이고, 신문기자는 돈 내고 택시타면 그만입니다. 거기 뭐, 위아래 가를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러나 덜떨어진 시민이라면 이런 평등한 관계마저도 “아들 뻘” 운운하면서 상하관계로 바꿔놓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남을 밟았다는 짜릿한 성취감 같은 걸 맛보려는 걸까요? 


상하관계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하필이면 ‘아들 뻘’입니까? 아들 뻘이면 아버지 뻘 한테 그렇게 멱살 잡히고 따귀 맞고 낭심 걷어 채여야 하는 걸까요? 요즘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그렇게 합니까? 이제 마흔 셋이면 아들이 있어도 중고등 학생일 텐데, 그만한 아들에게 그런 난동 부릴 수 있을까요? 홍석준 기자가?


난 대통령 친구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까지 나오는 발언입니다. 홍석준 기자가 친구라고 한 그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이란 말도 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전두환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세살 연상을 아들 뻘로 닦아 세우는 사람이라면 70넘은 전직 대통령을 친구 먹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요. 다만 궁금한 것은 전두환이나 김영삼 대통령 앞에서도 홍석준 기자가 ‘넌 내 친구’라고 건방을 떨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전여옥 버전^^).


홍석준 기자가 친구라고 선언한 게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선 홍석준 기자 같은 사람하고 친구하는 사람이었다면 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고 지지한 것은 조선일보와 맞짱뜬 유일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지, 그 직원들과 친구 먹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작 재미있는 것은 홍석준 기자의 머리통 속입니다. 수갑을 차고 연행 당하던 홍석준 기자가 경찰관에게 “난 대통령 친구다”고 씨부린 이유가 뭘까요? “날 건드리면 니가 죽는다”는 위협이겠지요? 웃깁니다. 대한민국 1등신문 주장하는 조선 기자 머리통 속에서는 술 취해 행패부린 친구 뒤치닥꺼리나 해주는 게 대통령 업무에 속하나 봅니다.


이런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 진짜로 대통령 친구라면 아찔할 겁니다. 친구랍시고 대통령 팔아서 엄청 해처먹었겠지요? ‘내가 친구 대통령 비자금 관리하는 데 말야…’ 하면서 말이지요. 식은 땀 나는 상황입니다.


‘난 대통령 친구다’는 발언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슬픈 사실은 ‘정치’부 기자를 20년씩이나 해먹으면서도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조차 없다는 겁니다. 대통령은 친구가 아닙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종입니다. 일 시켜 먹으려고 한시적으로 표 찍어준 일꾼이라는 말이지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난 대통령 친구’라고 떠들고 다니느냐는 말입니다.


정치부 기자질을 20년이나 했으면 홍석준 기자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등의 제왕적 대통령을 ‘모셨’더랬겠군요. 그런 대통령을 당연하게 여기던 홍석준 기자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한 뜻을 이해할 능력이 전혀 없을 만도 합니다. 


혹시나 이번 사건이 깨달음의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한 수 가르쳐 드리지요.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말은 말입니다.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에서 ‘제왕’ 부분은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말입니다. 자기는 그냥 대통령만 하겠다는 겁니다.  종이고 청지기라는 말이지요.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을 부려먹으면 그만입니다. 그게 내가 그를 지지하는 까닭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남겨두고 만취 행패 뒤치닥꺼리 시키려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시대착오도 유분수지.


삐딱한, 전라도, 돼지 새끼


이건,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할 말은 많은데 가슴이 미어져서 제대로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류의 망발을 조리있게 반박할 능력이 제게 모자라는 거겠지요.


술 먹으면 누구나 개가 된다는 말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처럼 취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말이 있습니다. “고졸 대통령”이라든가 “가난 콤플렉스”가 바로 그런 것이고, “전라도 새끼” 운운이 바로 그런 것이지요.


광주 항쟁 청문회 때, 온 국민이 티비 앞에 붙어 있을 때도 제 주변의 전라도 분들은 티비 보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운동 보상 문제로 떠들 때도 말 한 마디 없이 가만들 계셨습니다. 과거사진상규명법안 이야기로 국회가 떠들썩해도 입을 꾹 다물고들 계셨고,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 ‘5공화국’도 보지 않습니다.


왜들 그러시는 지 홍석준 기자 나부랭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요? 아마 홍석준 기자의 아들/딸이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고 그 뒤로도 이십년 동안 말도 못하고 지낸 다음에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요. 직접 겪지 않아도 그런 아픔에는 동참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지만 저런 망발까지 하는 걸 보면 홍석준 기자로서는 불가능한 일일 겝니다.


홍석준 기자가 이번 사건으로 수치를 느끼거나 반성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저 ‘재수 더럽게 없네’ 할 뿐이겠지요. 뉘우칠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는 며칠 안 돼서 조선일보 지면에 뭔가를 나불나불 써대겠지요. 그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제게 드는 아련한 생각은 그저 이런 것일 뿐입니다.


‘아직도 여기까지 밖에 못 왔구나, 우리 사회가.’



평미레 드림/

7/14/2005


 
가져온 곳: [앨리스]  글쓴이: 앨리스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