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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강산21 2018. 10. 8. 01:54

 

혐오표현의 해악을 치밀하게 논증한 제러미 월드론은 혐오표현이 한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한 삶을 파괴하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공선public good'을 붕괴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혐오표현 규제가 "모욕,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의 공공선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지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월드론이 말하는 공공선은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의 조건을 말한다. 각 구성원들은 자신의 속성이 무엇이든 적대, 배제, 차별, 폭력을 당하지 않고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공존의 조건하에서 모든 구성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자격", 즉 존엄한 존재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혐오표현은 이러한 "포용의 공공선"을 파괴하는 것이다.

 

월드론은 혐오표현이 어떤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을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이 만연한 환경에서는 소수자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적대, 폭력, 배제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없다. 또한 월드론은 존 롤스의 정치철학에 바탕해 질서정연한 공정한 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우하고 대우받을지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이들은 평등한 인간이고, 인간성의 존엄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정의에 관한 기초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이들은 폭력, 배제, 모욕, 종속의 가장 지독한 향태로부터 보호받을 자격이 있음에 관한 확신" 하는 것이 정의의 중요한 기초인데, 혐오표현은 이 기초를 붕괴시킨다는 것이다.

 

혐오표현이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면 이것은 헌법적 가치인 '인간 존엄', '평등',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연대성' 등을 훼손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표현이 이러한 가치들을 파괴한다면 표현의 자유가 우선시될 수는 없다. 만약 혐오표현이 소수자를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청중들을 차별과 배제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등의 현실적 해악을 가지고 있다면 평등과 인간 존엄 등 다른 헌법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어크로스, 2018.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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