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강산21 2019. 2. 20. 01:26

 

한 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두뇌의 힘을 연료로 하는 진보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진화는 점점 더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만들어냈고 결국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해져서 자연의 비밀을 파악하고 양을 길들이며 밀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게 가능해지자마자 지겹고 위험하고 종종 스파르타처럼 가혹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농부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욱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수렵채집인들은 농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동물과 채집하는 식물을 잘 알고 있어야 생존할수 있었기 때분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들은 그보다 더 활기 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학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잠시 농업혁명을 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1만 년 전 밀은 수많은 잡초 중 하나일 뿐으로서 중동의 일부 지역에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천 년 지나지 않아 세계 모든 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본적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북미의 대초원 지역 같은 곳에는 1만 년 전 밀이 한 포기도 없었지만 지금은 수백 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어도 밀 이외의 다른 식물을 볼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밀이 경작되는 지역은 225만 제곱킬로미터쯤 되는데 이는 브리튼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포함)의 열 배에 이른다.

 

어떻게 이 잡초는 그저그런 식물에서 출발해 어디서나 자라는 존재가 되었을까? 밀은 호모 사피엔스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작함으로써 그렇게 해낼 수 있었다. 약 1만 년 전까지 이 유인원은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상당히 편안하게 살고 있었으나, 이후 밀을 재배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천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많은 지역의 인간은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밀을 돌보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밀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밀은 바위와 자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밭을 고르느라 등골이 휘었다. 밀은 다른 식물과 공간, 물, 영양분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온종일 잡초를 뽑는 노동을 했다. 밀은 병이 들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해충과 마름병을 조심해야 했다. 밀은 자신을 즐겨 먹는 토끼와 메뚜기 떼에 대한 방어책이 없었기 때문에, 농부들이 이를 막아야 했다. 밀은 목이 말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샘과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댔다. 밀은 배가 고팠기 때문에, 사피엔스는 밀이 자라는 땅에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동물의 변을 모아야 했다.

 

사피엔스의 신체는 이런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사과나무에 기어오르고 가젤을 뛰어서 뒤쫓는 데 적응했지, 바위를 제거하고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데 적합한 몸이 이니었다. 인간의 척추와 무릎, 목과 발바닥의 장심(발바닥의 오목한 부분 - 옮긴이)이 대가를 치렀다. 고대 유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길들이다, 가축화하다'라는 뜻의 단어 'domesticate'는 '집'이라는 뜻의 라틴어 '

domus'가 어원이다. 집에서 사는 존재는 누구인가? 밀이 아니다. 호모 사피 엔스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12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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