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이타주의자
대다수 사람들은 공직자 투표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면 투표가 시간낭비리고 주장한다. '괴짜경제학'의 저자인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스티븐 레빗이 블로그에 쓴 다음 글을 보자. 레빗은 이에 앞서 뉴욕타임즈 기고문에서도 같은 논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수백년에 걸친 미국 선거 역사상, 예컨대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서 단 몇 표 차로 결과가 바뀔 만큼 박빙의 접전을 보인 선거는 한 번 정도지 싶다 (...) 투표의 의미는 전혀 다른 데 있다. 그저 재미로, 아내가 좋아하니까, 미국인이라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내가 던진 한 표가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자. (...)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기대가치를 감안하면 레빗의 결론은 너무 성급하다. 투표해 봤자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안 해도 무방하다고 쉽게 단정지을 순 없다. 그보다는 실제로 영향을 미칠 경우 그 보상이 얼마나 큰지를 따져 보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도 이 골치 아픈 작업은 통계학자들이 이미 끝냈다. 미 50개 주 및 워싱턴 컬림비아 특별구의 2012년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했던 탁월한 정치전문가 네이트 실버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실버는 컬럼비아대 통계학과 교수 앤드루 젤먼, 버클리대 법학과 교수 에런 에들린과 함께 2008년 미 대선에서 1표가 결과를 바꿀 확률을 계산했다. 그 결과 1명의 투표자가 결과에 미칠 가능성은 평균 6000만분의 1이었다. 낮은 확률인 건 분명하다.
다음으로 투표의 이해관계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얼마간 짐작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자.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할 경우 내가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공화당 지지자라면 세금 감면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민주당 지지자는 정부 출연 공공서비스 확대라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편의상 지지정당 집권이 당신에게 1000달러의 가치에 상응하는 일이라고 가정해 보자. 가정이긴 하지만 1인당 1000달러가 터무니없는 금액은 아니다. 미 정부의 연간 재정지출 총액은 3조5000억 달러다. 4년이면 14조 (1인당 4만 4000달러)달러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2.5% 더 효율적으로 쓰인다면 1인당 혜택은 1000달러가 되는 셈이다. 물론 재정지출 이외에 규제 등 다른 요인들도 경제 사정에 영향을 미친다.
레빗을 위시한 경제학자들은 당신의 투표 행위에 따른 기대가치가 0.0016센트(6000만분의 1×1000달러)라고 할 것이다. 기대가치가 이 정도로 낮다면 투표는 시간 낭비가 맞다.
하지만 이 논리는 투표의 가치를 '당신에 대한' 가치로만 제한시킨다. 그보다는 더 나은 정당이 집권했을 때 창출되는 '총 혜택'을 고려해야 한다. 더 나은 정당이 집권했을 때 1인당 1000달러 상당의 혜택이 제공된다는 가정을 다시 적용하면 전체 미국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1000달러에 미 인구 3억1400만 명을 곱한 금액인 3140억 달러가 된다. 따라서 투표 행위에 따른 평균 기대가치는 성공 가능성(6000만분의 1)에 미국인 전체에 제공되는 혜택(내가 가정한 바로는 3140억 달러)을 곱한 금액인 5200달러다. 이런 의미에서 투표 참여는 자선단체에 수천 달러를 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백만장자라면 모를까 투표할 시간에 일을 더 해서 돈을 그만큼 기부하는 것보다 투표에 참가하는게 시간을 훨씬 더 알차게 활용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부키, 2017. 12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