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의 전쟁
많은 기사들이 기존 업체에 남는 편을 택했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더욱 그랬다. 6월보다도 오히려 7월에 원주의 카카오 대리기사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프로그램에서 근처 대리기사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번화가에서도 기사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지방의 전업 대리기사들이 생존을 위해 카카오를 탈퇴했다.
지역 대리업체의 옷을 입고있는 기사들을 만나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일을 하며 친해진 카카오 기사 두엇과는 "이거 카카오 쓰다가 어디서 맞는거 아닙니까?"하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뭐랄까, '동류'이지만 '동료'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 카카오와 비카카오 기사들 간에는 그러한 위화감이 흘렀다. 자본을 가진 갑과 갑의 전쟁에서 피해자가 된 것은 결국 노동의 주체인 '을'이었다. 너와 나를 구분하고 어느 편에 서야만 했으며, 그렇게 자연스레 '갑의 대리인'으로서 참전했다.
나는 '지방시'라는 글을 세상에 내놓으며 계속 대학에서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 쓴 글이었다. 교직원이나 보직 교수가 그것으로 트집을 잡으면 그와는 싸워나가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동료들이었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같은 교양과목을 강의히던 시간강사들이, 왜 자신들을/대학을 모욕했는지를 나에게 물었다. 내 앞을 막이선 것은 갑이 아닌 을이었다. 대학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동료였던 이들과 마지막 술자리에서, 나는 당신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나를 향한 성토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이것이 마지막 자리가 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당신의 논문에 대해 내가 가볍게 말한 일이 있다며 사과했고, 누군가와는 가볍게 포옹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나는 며칠 후 연구실 자리를 정리하고 대학에서 나왔다.
대학이라는 '갑'은 전쟁의 주체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믿는 대리인들이 자연스럽게 그 전쟁을 수행하게 했다. 그런데 나의 앞을 막아선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나 역시 갑을 위한 '대리전쟁'에 수차례 동원되어 왔기 때문이다. 대학을 그만둔 선후배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라 대학의 입장에 섰다. 아무 문제 없는 공간에서 왜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는지 알 수 없다면서 나간 자들의 나약함을 탓했다. 그들의 앞을 직접적으로 막아선 것은 아니지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이 한 발 나서면 언제든 그 앞을 막아설 준비도, 아마 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다. 반드시 폭언이나 폭력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수행자가 된다. 내 주변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그와 나 사이에 선을 긋는 것 역시, 갑의 욕망을 대리하는 행위인 것이다.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을은 계속해서 동원되고 희생될 것이다. 갑과 갑의 싸움에서 시작된 대리운전 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20퍼센트가 넘는 수수료에 더해 보험비, 프로그램 사용비, 출근비, 입금 수수료 등의 추가금을 부담해야 하고, 유니폼을 따로 구매하거나 핸드폰까지 개통해야 하는 왜곡된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를 바꾸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야한다.
대리기사들의 네트워크는 의외로 단단하다. 모두가 하루쯤 출근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밤은 절반쯤 멈춘다. 그렇게 전국적인 파업을 하는 것도 정말로 멋진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갑의 욕망을 위한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위한 주체로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대리사회> 김민섭, 와이즈베리, 2016. 18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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