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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보다 못한 근로환경

강산21 2017. 2. 22. 10:23

교도소보다 못한 근로환경

 

당시 어린 여공들이 경험한 근로조건은 나같이 서울의 유복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 묘사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다. 오죽했으면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놓았을까. 그 시절도 근로기준법은 있었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라"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쳤다. 안 지켜서, 아니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이 만들어서 그렇지 근로기준법은 꽤 좋았다.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 등 노동3법은 한국 전쟁 중인 1953년 초에 그야말로 후닥닥 만들어졌다. 유엔 참전국들은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파병을 했는데, 각 나라의 야당이나 노동운동계에서는 노동3법도 없는 한국에 지켜야 할 민주주의가 어디 있느냐면서 철군을 주장하거나 원조를 삭감하라고 아우성쳤다. 급하게 법을 만드느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일본의 노동법을 베꼈다. 미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부활을 막으려면 노동운동이 제 구실을 해야한다고 보고, 자국에서도 자본가들의 압력 때문에 반영하지 않은 조항들을 노동법에 많이 담았던 것이다. 법은 꽤 좋았지만, 정권은 법을 안 지키는 자들을 단속한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빨갱이라고 잡아갔다. 1973년 노동청을 만들면서 청장에 연이어 치안국장 출신(최두열, 최석원)을 임명한 것만 봐도 유신정권이 노동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흔히 1970년대를 대표하는 투쟁이 벌어진 동일방직이나 원풍모방이 노동조건이 열악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정은 정반대였다. 이런 곳에서 민주노조가 결성되고 투쟁이 벌어진 것은 노동환경이 열악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근로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당시의 투사들은 입을 모은다. 나의 또 다른 누님 같은 제자 장남수의 노동 수기 <빼앗긴 일터>에는 그가 잡혀가 구치소에 갇힌 얘기가 나온다. 당시 장남수는 근로조건이 가장 좋다고 소문난 원풍모방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구치소에서 주는 밥이 기숙사 식당에서 주는 밥보다 훨씬 좋았다고 한다. 신순애도 교도소에 가서 난생처음으로 우엉이나 연근 같은 반찬을 먹었다고 한다. 신순애는 가족들에겐 좀 미안했지만 교도소에서는 실컷 잠 잘 수 있었고 때 되면 밥도 줘 여러 가지로 편했다고 한다. 게다가 구치소는 국도 주고 물도 주었다. 국민교육헌장의 가르침대로 능률을 지독히도 숭상하던 시절, 공장 식당에서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면 능률 떨어진다고 국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아 노동자들은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 했다. 하루 열댓 시간 죽도록 일해도 죄수보다 못한 생활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참 서글펐다. 박정희는 노동자들의 가난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탓이라며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강요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 첫 차를 타고 일 나가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힌홍구, 한겨레출판, 2014. 170-172.

 

아래는 책 소개

http://chleogh.tistory.com/m/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