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물고기의 민주주의

강산21 2017. 4. 6. 14:12



물고기의 민주주의

프린스턴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이아인 쿠진은 이렇게 말한다. “물고기 무리에서부터 새 떼, 그리고 영장류 집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 집단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속성은 ‘목적지와 과제를 결정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쿠진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물고기 한 마리가 잠재적인 식량원을 향해 나아갈 때, 다른 물고기들은 지느러미를 이용하여 ‘그를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처럼 고도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내린 집단적 의사결정은 어느 개체가 단독으로 내린 의사결정보다도 우수하다.”
합의적 의사결정의 이득은 집단의 크기가 증가할수록 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는 골든샤이너(잉어과 물고기)는 단체로 헤엄칠 때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적은데, 그 이유로는 두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정보를 취합하여 정족수 반응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에 능통한 소수의 전문가나 리더를 따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고기 개체들의 외모를 보고, ‘물고기 집단이 어느 개체를 따를 것인가’를 짐작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조건들이 모두 동일하다면, 건강하고 튼튼한 물고기가 허약한 물고기보다 더 훌륭한 의사결정자일거라고 간주한다. 그런데 물고기의 생각도 우리와 마찬가지일까? 스웨덴, 영국, 호주의 생물학자들로 구성된 다국적 연구팀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큰가시고기를 이용한 시험을 설계했다. 먼저, 연구팀은 투명한 아크릴 수조의 양쪽 끝에 멋진 바위와 수초로 이루어진 은신처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가운데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큰가시고기 모형 두 마리를 띄워놓고 좌우의 은신처와 가느다란 나일론실로 연결했다. (두 마리의 모형은 외모가 달라 연구팀이 보기에 건강상태가 달라보였다. 예를 들면 덩치가 큰 모형은 덩치가 작은 모형보다 더 적합해 보인다. 왜냐하면 사냥도 잘하고 오랫동안 생존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실토실한 모형은 삐쩍 마른 모형보다 영양상태가 양호해 보이며, 검은 점이 많은 모형은 기생충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이 병약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수조에 진짜 큰가시고기를 풀어놓은 다음 모형 한 마리씩을 왼쪽과 오른쪽에서 일정한 속도로 잡아당겼다. 큰가시고기는 둘 중에 누구를 따라갔을까?

큰가시고기들은 마치 연구팀의 연구계획서를 미리 보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 한 마리만 넣었을 때는 60% 비율로 건강해 보이는 모형을 따라 은신처로 헤엄쳐 갔다. 그러나 그룹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건강해 보이는 모형을 따르는 비율이 상승해, 10마리일 때는 비율이 80%까지 올라갔다. 이는 합의적 의사결정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고기의 민주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개발된 정교한 도구가 있다. 바로 로봇 물고기다. 얼마나 리얼하게 헤엄을 치는지 피라미들도 자연스럽게 대응할 정도여서, 과학자들이 물고기의 집단행동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따로 노는 큰가시고기들은 비적응적으로 행동하는(포식자를 향해 헤엄쳐가는) 로봇물고기 리더를 멋모르고 따라가지만, 큰가시고기 무리는 정족수 반응을 나타냄으로써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엉터리 리더에게 반기를 드는 물고기의 수가 충분해지면, 나머지 물고기들도 반란자들에게 가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규모 모기고기(모기의 유충을 먹는 물고기) 떼는 Y자형 미로에서 로봇물고기를 따라 위험한 곳(포식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지만, 대규모 모기고기 떼는 로봇물고기 리더를 따르지 않고 안전한 쪽을 선택한다.

<물고기는 알고있다> 조너선 밸컴, 에이도스. 2017. 23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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