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언제부터 독서는 우리 모두의 취미가 되었나?

강산21 2017. 6. 23. 23:34

 

언제부터 독서는 우리 모두의 취미가 되었나?

 

전 국민의 대표 취미라 해도 과하지 않은 것이 바로 '독서' 아니겠는가. 학창 시절 학생기록부부터 시작해 입학 원서, 입사 원서를 필두로 각종 원서에 빠지지 않는 항목 중에 하나가 '취미'란인데 누구나 한 번쯤은 여기다 독서라고 써내 봤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전 국민이 그렇게 책을 읽는데 왜 우리나라 출판 산업은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기록을 갈아치우는지 모르겠다. 그건 논외로 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순수하게 읽고 싶어서 읽는 책도 있지만 우리는 아주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책을 읽어왔다. 적어도 지난 20여 년간은 그랬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는 독서를 훌륭한 취미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실질적으로 우리가 책을 자유롭게 읽기 시작한 것은 1993년 12월 15일 세계 115개 나라가 참여하여 7년 이상 끌어온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된 것을 기점으로 세계화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면서부터다. 독서랑 우루과이라운드랑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그전까지를 간략히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뭘 읽을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제껏 우리가 뭘 읽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전후 군사쿠데타로 장기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겉으로는 출판 유통의 근대화를 도모하고 출판을 진흥하는 다수의 법을 제정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정권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는 도서의 출판과 판매를 규제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었으니,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출판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민주화 시대가 열리면서 종로서적의 뒤를 이어 교보문고, 동화서적 등의 대형 서점이 개점했다. 이 무렵 국내 출판 종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에 2만 종을 넘어섰던 출판 종수가 불과 3년 만인 1983년에 3만 종을 넘어설 정도였다. 이 시기에 출판이 산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정당성 없는 독재정권을 연장하려는 정치적 지배 집단의 탄압과 민주화를 쟁취하려는 전 국민적 열망이 극단적으로 대결했다. 출판도 독재와 민주화 간의 대립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1980년 5월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집권한 신군부는 1597개의 출판사 가운데 617개 출판사의 등록을 취소하고 신규 출판사에 대한 등록을 억압했다. 1985년에는 소위 이념 도서를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사회 과학 서점들에 대한 불법 압수 수색을 강행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 등을 거치면서 거센 민주화 운동의 열기에 무릎 꿇은 독재 정권은 출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고, 1987년 10월 결국 출판 자율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서 우리는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세계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지만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1996년 1월 1일에 발효된 세계무역기구 설립 조약과 그 부속 문서의 하나인 지적재산권의 무역적 측면에 관한 협정이 시행되면서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 수준을 국내법으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소설이나 음반, 영화들이 공공연하게 복제, 판매되었으니, 이로써 출판 시장은 국제 출판 시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영향으로 국내 출판계에 다양한 대응책들이 나왔고, 마침내 2007년 출판문화진흥법이 수립됐다. 이후 5년 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사실상 규제를 목적으로 했던 출판 관련 법률이 진흥을 위한 법률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책을 읽을 만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시간편집자-어느 여가사회학자의 행복에 관한 연구, 최석호, MBC C&I, 2017. 118-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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