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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 본능

강산21 2017. 7. 4. 14:47

 

이타 본능

‘잡아먹느냐, 잡아먹히느냐’의 원칙,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 사이에서 ‘다윈주의’라는 이름으로 떠도는 내용은 알고 보면 이 영국인 생물학자의 이론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들이다. 다윈이 살아 있을 때부터 진화론은 온갖 정치적 해석으로 인해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다윈은 그로 인해 크게 상심했다. 이 장의 첫 부분에 인용한 그의 글은 1860년 지질학자 찰스 라이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다윈은 그 편지에서 얼마 전에 출간한 <종의 탄생>에 대한 <맨체스터 가디언>의 해석을 마음껏 비아냥거렸다. 그런 그릇된 관심이나마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이기주의의 전도사로 소개되기 일쑤지만 사실 다윈은 마음이 정말로 여린 사람이었다. 비글호를 타고 탐사 여행을 하던 중 브라질의 한 해변 도시를 산책하던 그의 귀에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담 너머 어딘가에서 노예가 학대를 받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윈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날의 기억은 아주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를 괴롭혔다. 먼 곳에서 고함 소리만 들려도 그는 그 기억을 떠올렸다. 훗날 그는 여행기에서 ‘나는 노예 제도가 있는 나라에는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라고 썼다.

1842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죽을 때까지 영국 남부의 다운 마을에 살았고, 그곳에 가난한 농촌 일꾼들을 돌보는 ‘공제조합(Friendly Society)’을 만들었다. “하루는 산책 가셨던 아버지가 얼굴이 해쓱해져서 지친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말이 학대받는 광경을 보셨던 것이다.” 또 어떤 농부가 양 몇 마리를 굶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증거 자료를 모아 치안 판사에게 보냈고,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다윈은 그런 이타심을 자신의 학문 이론과 어떻게 함께 지닐 수 있었을까? 고귀한 전사의 멸종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맹신하기에는 그는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학자였고 인생 경험도 정말 풍부했다. 비글호를 타고 항해할 당시에도 그는 순수 이기적인 인간 본성과는 맞지 않는 사건들을 많이 기록했다.

티에라델푸에고 섬에서 21세기 다윈은 지금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정말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그는 ‘한 야만인의 첫인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벌거벗은 푸에고 섬의 원주민이었다. 긴 머리털이 이리저리 흩날렸고 얼굴엔 흑칠을 했다. 그가 바위에 서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몸짓을 했는데, 집에서 키우는 가축의 소리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소리였다.” 푸에고 섬 원주민들은 부족한 자원 탓에 굶주렸고 그러다 보니 다툼이 잦았다. (다윈은 그들의 식량 사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여 과수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짐승 같은 첫인상의 원주민에게도 정의감이 있었다. 1834년 2월 작은 카누 한 척이 비글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나는 한 남자에게 큰 못을 주었다. 그들에게 정말 값진 선물이었지만 우리는 대가를 원한다는 몸짓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당장 물고기 두 마리를 집어 창 끝에 끼워서는 나에게로 내밀었다.” 원주민끼리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카누에게 주려는 물건이 다른 카누 옆에 떨어지자 주워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 원주민들의 행동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정의감을 배웠을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푸에고 섬 주민들은 바깥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살았다. 그럼 그들의 도덕심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윈은 이 질문을 반평생 동안이나 고민했다. 비글호 항해를 마친지 40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그 문제를 거론했으니 말이다. 만년에 출간한 <인간의 유래>에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장을 할애했다.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정신력과 선호도가 신체 구조와 마찬가지로 진화한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쳤다. 많은 동물은 ‘사회적 본능’을 타고나기 때문에 집단을 찾고 집단 구성원에게 호감을 느낀다. 특히 정신력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 같은 생명체의 경우 이런 본능은 ‘불가피하게도’ 타고난 정의감과 도덕심으로 발전한다. 바로 그 때문에 세대를 거듭해도 이타적 행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타고난 협력 성향이 인간에게 이따금 이타적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어떤 정신 혁명을 몰고 올지 다윈은 예상하지 못했다. 또 이런 사회적 본능이 정확히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그것이 어떻게 공정과 선을 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론을 펼치지 않았다. 그는 원시인이 도덕심을 키운 것은 칭찬을 갈망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추가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에 그의 후계자들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타인을 돌본다는 다윈의 이론을 스승의 착각으로 치부해버렸다.

하지만 다윈은 이런 깨달음으로 자신의 시대를 100년 이상 앞서갔다. 오늘날에야 우리는 이타적 충동이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어떻게 탄생하며, 장기적으로 얼마나 우리에게 유익한지 서서히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그 새로운 인간의 자화상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친절하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인간 공생의 게임 규칙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의 숨겨진 힘> 슈테판 클라인, 웅진지식하우스, 2011. 3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