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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대령살상무기 관련 정보의 비약 - 정보전쟁

강산21 2017. 7. 26. 17:27

 

이라크 대령살상무기 관련 정보의 비약

 

2003년 3월 이라크전쟁 발발 전까지 미국 정보기관들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에 대한 정보를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1991년 제1차 걸프전 이후 이라크와의 외교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에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1937-2006) 정권에 믿을만한 협조자를 부식하지 못해 인간정보활동 수집 능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중동 지역에 대한 통신, 신호정보 수집 능력도 제한적이었으며, 아랍어와 아랍 문화에 익숙한 분석관들도 별로 없어 아랍어로 된 자료를 해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이라크에 대한 첩보는 후세인 정권에 반대해 해외로 도피한 망명 세력이나 간헐적 영상정보 등 제한된 출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라크에 들어가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사찰 활동을 전개하던 유엔사찰단이 철수한 1998년 이후에는 중요 정보 출처를 상실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보고하면서 첩보가 빈약하고 출처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등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2002년 3월 17일, 이라크 상공을 정찰하던 미국 정보위성이 바그다드 동남쪽 무사이브 화학 단지에 주차된 대형 흰색 탱크로리 차량을 포착했다. 잇따라 촬영된 위성사진에서는 단지 주변의 벙커와 경비 요원, 울타리 등 보안 시설의 윤곽이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에 일부 위성사진 분석관들은 화학물질 제독 차량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무사이브 화학 단지 주변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유엔사찰단의 감시로부터 숨기려는 목적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Bureau of Inteligence and Research)을 비롯한 많은 분석관들은 판단을 유보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다. 정보공동체는 2002년 초여름까지 이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서 더 구체적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2002년 여름부터 정보기관의 이런 기조는 바뀌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이라크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 능력도 확보하기 바로 직전이라는 평가로 비약된다. 이런 정보기관 평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 2002년 10월 발표된 ‘이라크의 지속적 WMD 프로그램’ 제하 국가정보판단서(NIE 2002-16HC)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가 500톤에 달하는 화학무기, 치명적인 생물성 병원체, 탄저균과 천연두균 등을 개발하는 이동식 생화학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라크가 해외에서 핵물질마저 획득할 경우 1년 내에 핵무기도 갖게 될 것이라고 부언했다 이후 정보기관들은 국가정보판단서의 판단을 더욱 사실로 만들어 주는 소위 ‘사탕발림(sugarcoating)’보고서를 올렸다. 이런 보고서들을 토대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엄존하는 집합적 위협의 실체라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 12월 후속 국가정보판단서(NIE, National Inteligence Estimate)에서는 다음과 같이 더욱 분명한 결론을 도출한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해체를 위한 지난 10여 차례의 국제사회 노력에도 불구, 이라크가 생물성 제재의 생산 능력을 대량으로 갖추고 생산 물질을 은닉하는 등 생물학무기 프로그램을 공격적으로 확충해오고 있다는 것이 새로 입수된 정보들을 통해 확인됐다. 우리는 이라크가 이미 밝혀진 생물학 제재의 생산 능력뿐만 아니라 세균성 및 독성 제재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라크가 페르시아 만 내에서 미국 및 동맹국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생물학무기 운반 수단(미사일)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정보 판단에 근거해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신년 시정연설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이 심각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너무 늦기 전에, 더 적극적 조치가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정보기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이 아프리카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했다는 미확인 첩보까지 인용했다. 더 나아가 2003년 2월 파월 국무장관은 CIA 부장을 대동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확보 의지가 너무나 분명해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3월 20일 새벽 국제사회의 동의가 없는데도,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군만을 상징적으로 포함시킨 채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정보전쟁> 박종재, 서해문집, 2017, 25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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