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숙주인간

강산21 2017. 9. 15. 16:11

 

질병세균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생명체들도 치유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깨끗한 위생, 예방접종, 치료, 이런 것들은 현대의료의 주춧돌이다. 하지만 초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이 이런 습관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렇게 진화된 방어기제가 없었더라면 면역계는 곧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널리 잘못 해석되고 있는 사례가 바로 과학자들이 말하는 ‘질병행동’이다. 병에 걸리면 우리는 열이 오르고, 식욕을 잃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이런 증상들은 질병원이 당신을 약화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이것은 뇌가 침입자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계와 힘을 합쳐 다방면의 군사작전을 개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감염생물은 보통 아주 좁은 온도 범위 안에서만 살 수 있다. 따라서 몸에 열이 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병원체를 삶아 죽이려는 행동이다. 이것은 아주 기발한 방어 전술이기는 하지만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흠이다. 체온을 섭씨 1도만 올리려고 해도 평균 신장의 성인이 대략 40km를 걷는데 소비되는 것과 맞먹는 열량이 요구된다. 이런 막대한 에너지를 전장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뇌는 재빨리 지시를 내려 보내기 시작한다.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마! 여자(남자)한테 한눈팔지 마! 쓸데없이 배를 채워서 소중한 에너지를 소화에 쓰게 하지 마! 하던 일 다 내버려두고 빨리 침대로 쓰러지라고!’

그리하여 당신은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른 채 잠이 들게 된다.

 

세균을 죽이는데 체열이 너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체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동물들, 예를 들면 메뚜기, 새끼 토끼, 그리고 도마뱀 같은 냉열동물 등은 병원체를 익혀 죽일 다른 대안을 찾아냈다. 바로 일광욕이다. 질병행동이 병원체에 대한 방어기전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과학자들이 동물을 세균에 전혀 노출시키지도 않고도 그런 행동을 유도해 보일 수 있다면 의심이 풀리지 않을까 싶다. 건강한 설치류에게 사이토카인이라는 면역성분만 주사하면 된다. 그럼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던 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쳇바퀴 굴리는 일에도 흥미를 잃고 만다. 체온은 치솟고 고개는 떨궈진다. 사실은 건강한 상태인데도 아픈 것처럼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다.

 

가끔은 열을 이용하는 방어기제만으로는 급속히 증식하는 세균과 그들이 대량으로 뿜어내는 독소들을 통제하기에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신경계는 면역계를 돕기 위해 위장관의 주요 지점에서 밸브를 열고, 그와 동시에 주기적인 내장 수축의 방향을 역전시켜 음식을 왔던 곳으로 강제로 되돌려 보낸다. 뇌에서는 메스껍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웩!” 축하한다! 당신은 불과 몇 번 꺽꺽거린 것으로 끔찍한 세균 대군을 토해낸 것이다.

 

구토는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예방조치이기도 하다. ‘공감구토’는 누군가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구토를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모방 행동이 진화한 이유는 아마도 식중독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과거 세대에는 식중독이 지금보다 좀 더 흔하고 치명적인 질환이 있다. 당신이 원시시대에 모닥불 옆에 자리잡고 앉아 영양고기를 사람들과 함께 삶아 먹고 살았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먹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그 사람이 갑자기 구역질하는 것이 영양 고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뭔지 몰라도 그 사람과 똑같이 반응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방법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구토가 전염성이 대단히 높은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숙주인간> 캐슬린 매콜리프, 이와우, 2017. 190-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