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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인종차별주의 - 보노보 찬가

강산21 2011. 2. 6. 18:36

우리 안의 인종차별주의


우리는 세계사에서 백인종이 유색인종을 어떻게 억압하고 차별했는지, 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센징’과 다른 아시아민족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잘 알고 있다. 여러 번의 외침과 싸워야 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우리 민족은 ‘피해자’, 다른 민족은 ‘가해자’ 또는 민족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자라는 관념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방어적 민족주의’나 ‘반만년 단일민족론’은 민족해방투쟁을 위한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인종차별주의라는 부산물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재일교포가 받는 차별에는 분노하면서, 우리 사회에 사는 ‘화교’들을 ‘짱꼴라’ 또는 ‘짱꿰’라고 비웃으며 차별했다.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화교에게는 무역업, 임대사업이 금지되었고, 주택, 상가, 토지 등 부동산 소유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1973년에는 심지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밥집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중국집에서는 쌀로 된 음식을 팔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만들어진 적도 있었다. 왜 주변의 다수의 화교들이 자장면을 만드는 일 정도에만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지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이 이루어지던 당시 재일교포는 이 정도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부각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차별정책으로 화교들은 사실상 ‘추방’시켜 놓고는 이제 와서 화교자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화상(華商)대회’를 유치하는 모습이 남세스럽다. 이러한 과거의 차별을 차치하더라도, 현재에도 화교의 경우는 주택장만을 위한 청약저축 가입이 봉쇄되어 있고, 장애인복지를 포함한 각종의 사회복지혜택을 받지 못한다.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자신이 마치 백인종인 양 검은 피부의 인종을 ‘깜둥이’로 비하했다.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외국 남성과 연애, 결혼하는 여자는 ‘양갈보’라고 불렀다. 타 인종과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튀기’로 불리며 ‘더럽혀진 피’ 취급을 받았다. 한국의 경제력이 커지고 국제적 지위가 상승하자 저개발국 출신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은 더 심해졌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크레파스의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명명한 것이 평등권 침해라고 결정하였고, 그 결과 ‘살색’은 ‘살구색’으로 바뀐 바 있다. 그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특정인종의 피부색만 사람의 ‘살색’이었고, 다른 인종의 피부색은 사람의 ‘살색’이 아니었다. 이상과 같은 이러한 상황에서 혼혈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열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2003년 펄벅재단 한국지부가 2003년 기지촌 출신 혼혈인 673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56퍼센트가 실업상태였고, 78퍼센트가 월수입 50만원 미만이었다.


외국인 운동감독이나 선수, 혼혈 운동선수와 연예인이 인기를 끌고 <미녀들의 수다>가 시청률이 높다고 하여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종차별주의가 증발하지는 않는다. 미식 축구스타인 하인스 워드의 사연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혼혈인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고조되었으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또한 당시 정부와 국회도 혼혈인 지원 및 차별시정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의미있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2007년 8월 17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과 관련한 이행보고서를 심사한 뒤, “외국인과 혼혈을 차별하는 단일 민족 국가 이미지를 극복하라”는 권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호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했고, ‘순혈’과 ‘혼혈’ 같은 용어도 인종적 우월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화는 필연적으로 사람의 이동을 수반한다. 급속한 노령화와 출산 기피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국 노동시장은 필연적으로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농촌 총각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국에서 신부를 구하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고래(古來)로부터 한반도에는 여러 인종과 민족들이 흘러들어와 혼융되어 살았으며, 우리는 그 후손들이다. 생물학적 의미에서 단일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남아 여성과 한국인 농촌 남성의 결혼, 동남아 남성 노동자와 한국 여성 노동자의 결혼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기존의 사회, 경제적 약자인 이들의 아들 딸이 ‘혼혈’의 딱지로 이중의 고통을 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인종차별주의를 막는 법과 제도, 그리고 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때이다.


조국, <보노보 찬가> 생각의 나무, 2009, 154-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