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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루어졌다

강산21 2010. 11. 11. 18:24

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루어졌다.

1989년 소비에트의 고르바초프는 개혁개방 원칙이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적용됨을 역설했다. 폼 나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 내막은 “우리끼리도 먹고살기 힘드니 니네들은 니네들끼리 알아서 먹고살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해 여름,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바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했다. 여름 휴가철, 인근 국가로 떠났던 동독사람들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선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탈출했다. 동독 정부가 급히 이를 저지하자, 동독 주민들은 여행자유화, 언론자유 등을 외치며 매주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이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까지 반대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위대의 대부분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사건은 정말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시위가 지속되던 11월 9일 저녁, 동독 정부는 여행자유화에 대한 정책을 수정 발표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전에 비해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특별한 내용이라고는 여권 발급 기간을 단축한다는 것뿐이었다. 저녁 6시 59\8분, 동독 공산당 대변인 권터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 내용을 발표한다. 그러나 정작 샤보브스키는 여행자유화 정책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자신이 무슨 내용을 발표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새로운 여행자유화 정책을 읽어나가던 그에게 한 이탈리아 기자가 그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지 물었다. 새 정책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던 그는 멀뚱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없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바로!”


대부분의 독일 기자들은 별 내용없는 여행자유화 정책에 시큰둥해했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오버하며 본국으로 급전을 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미국 기자들도 덩달아, “내일부터 당장 동베를린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밤 서독 TV는 외신을 짜깁기하여 “동독이 드디어 국경을 개방했다”는 애매한 보도를 내보냈다.


뉴스를 시청한 동독 주민들은 대책없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다. 정말 당장에 서독 여행이 가능해졌는지 알아보려는 호기심에서 나가본 것이다. 국경수비대가 저지했지만 동독 주민들은 “뉴스를 듣지 못했냐?”고 오히려 따졌다. 황당해진 국경수비대는 결국 길을 터줬고, 일부 동독 주민들은 베를린 장벽을 올라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흥분한 일부 주민들은 도끼, 망치를 들고 나와 아예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반대편 서베를린의 젊은이들도 망치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역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샤보브스키의 엉뚱한 브리핑이 없었더라면 베를린 장벽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렇게 역사는 필연적 인과관계보다는 아주 황당하고 우연한 방식으로 변한다. 한반도도 분명 예외는 아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쌤엔파커스, 2009. 237-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