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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적 삶의 방식

강산21 2011. 2. 1. 12:29

보노보적 삶의 방식


‘파니스쿠스’(paniscus)라는 종명(種名)을 가진 보노보는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지대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트로글로디테스’(troglodytes)라는 종명을 가진 침팬지와 구별되는 영장류 동물이다. 유인원 전문가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보노보는 여전히 ‘난쟁이 침팬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필자의 전공도 아닌 이야기를 감히 꺼내는 이유는 보노보가 보이는 특별한 행동양식 때문이다. 여러 침팬지 연구는 침팬지가 수컷 중심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고, 폭력을 수반하는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 다른 침팬지 집단과의 잔혹한 전쟁, 성인 수컷에 의한 유아살해 등의 행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 권력투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의 생물학적 기원을 바로 인간의 ‘사촌’인 침팬지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노보라는 인간의 다른 ‘사촌’은 침팬지와 전혀 다른 삶을 꾸리며 살아간다. 보노보에 대한 우리나라의 백과사전의 소개나 흥미 위주의 글들을 보면, 다른 동물과 달리 ‘프렌치 키스’를 한다, 성교시에 인간처럼 수컷과 암컷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정상위’를 취한다, 종종 같은 성끼리도 서로 성기를 문지르는 ‘동성애’적 모습을 보인다 등을 특이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보노보의 종적 특징은 이러한 ‘에로틱한’ 사항에만 있지 않다.

보노보의 경우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고,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하며, 공동체 내에서 부자보다 모자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보노보 무리는 암컷 중심의 사회이다. 보노보는 엄격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상당히 평등한 문화를 유지한다. 보노보는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고 끌어안는다. 보노보 무리 내부에서 성은 일방적 지배나 욕망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적 기쁨과 유대를 위한 놀이다. 한 보노보 무리가 다른 보노보 무리와 부딪힐 경우에도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서로 애정표현이나 섹스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고 평화를 유지한다. 보노보 무리에선 유아살해가 관찰되지 않는다.

물론 보노보 무리에서도 권력, 지배, 경쟁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발현하고 작동하는 구조와 문화는 분명 침팬지 무리와 구별된다. 마치 보노보는 남녀평등과 여성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의 정신,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를 제창한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正義論), 관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를 정립한 주디스 슈클라(Judith N. Shklar)의 철학, 복지 참여 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온랜 전통, 공존 돌봄 협력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사상, “전쟁이 아니라 연애를 하자”(Make Love, Not War)라는 196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슬로건 등을 이미 실천하는 듯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러한 보노보의 행태와 문화는 전 세계 영장류학계는 물론, 인류학계, 사회학계, 여성학계에 크나큰 충격파를 던졌다. 인류가 ‘자연법칙’으로 수용하는 침팬지식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보노보적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의 유전자에는 침팬지만이 아니라 보노보의 속성도 들어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조국, <보노보 찬가> 생각의 나무, 2009,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