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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 두 악인의 문제인가? - 불편해도 괜찮아

강산21 2010. 8. 28. 00:20

과연 한 두 악인의 문제인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본 아이덴티티> 씨리즈 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갖는 재미있는 특징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모두 처음 시작할 때는 매우 요란하게 전체 국가시스템이 잘못 작동되어 그야말로 괴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을 추적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고, 그 나쁜 사람들을 움직이는 훨씬 거대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런데 주인공이 그 배후를 추적하면서 영화가 막바지로 치닫다보면, 언제나 결론은 몇 명의 나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는 식이 됩니다.


거창한 시작에 비하면 끝이 너무 초라합니다. 두시간 안에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는 마치 <똘이 장군>(1978)에서 주인공이 북한 수령의 정체를 폭로하니 그냥 꿀꿀돼지에 불과하더라는 식의 우스운 결말을 연상케 합니다. 기본적으로 ‘국가시스템 전체는 언제나 정당하다. 다만 소수의 부패한 관료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스딸린식 사회주의 국가들이 ‘당은 언제나 옳다. 다만 소수의 부패한 당원이 있을 뿐이다’라고 믿는 것과 똑같은 의식구조이지요.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는 미국이 9.11 이후 이른바 ‘테러용의자’들을 고문이 가능한 나라로 보내 직간접적으로 고문하는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CIA가 고문에 관여할 수 있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준 것도 미국 법무부였습니다. 미국은 9.11 이전에도 제3세계 국가의 독재자들에게 고문방법을 수출하고, 고문기술자들을 불러 교육시킨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에서 볼 수 있듯이 신사의 나라 영국도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한 오랜 고문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국가시스템 전체가 범죄수행에 이용되는 현상이 꼭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사독재 정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가시스템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믿음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갖는 미덕도 있습니다. 국가라고 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단지 한 두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왜곡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화 <체인질링>(2008)이 보여주는 실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두명만 나쁜 마음을 먹으면 남의 아이를 억지로 자기 아이로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시스템이 친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처넣을 수도 있습니다.


제노싸이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르완다 제노싸이드는 가해자들에 대한 놀랍도록 생생한 기록을 많이 남겼습니다. 투치반군이 키갈리를 장악하자 이웃나라로 도망쳤던 후투들은 몇 년 안에 대부분 르완다로 돌아왔고, 그들 중 일부는 가차차 재판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불구속재판을 받으면서 외부와의 인터뷰에 많이 응했고, 심지어 가해자들의 증언을 모은 책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포즈를 취해준 경우도 있습니다.


평범한 농부, 교사, 학생, 공무원이었던 학살자들은 제노싸이드 기간 동안 오히려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서 매일 호각소리로 시작해 종료호각이 울릴 때까지 열심히 사람을 죽였습니다. 집에 일찍 가야할 사정이 있을 때에는 동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근무시간 중에 몇 배나 더 열심히 일하기도 했습니다. 업무가 사람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빼면 직장생활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투치인 아내의 생명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이 학살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처음 자기 손에 죽어가는 피해자들의 눈을 보았을 때의 공포와 끔찍함을 이야기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무감각했다고 고백합니다. 민병대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이들에게 머체티로 쉽게 사람 죽이는 법을 알려주고 실제 사람들을 상대로 연습도 하게 했으며,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몇 번이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학살자들을 움직이는 중심에는 라디오방송국이 있습니다. 라디오방송은 투치를 ‘바퀴벌레’로 지칭하며 바퀴벌레를 죽이라는 일반적인 지시와 함께, 지금 투치 바퀴벌레 누구누구가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도주하고 있으니 그를 죽이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습니다. 현장에서는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고, 방송국은 이를 토대로 구체적인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 라디오방송국이 일종의 학살사령부였던 셈입니다. 라디오방송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투치반군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사람을 죽이고 강간했습니다.


조직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는 가운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투치들을 죽이고 강간하면 된다는 단순한 목표만 존재했습니다. 지도자도 따로 없어서 교회성가대 지도자를 하다가 당장 학살지휘자가 된 사람도 있고, 현지 공무원의 지위에서 학살을 지휘한 사람도 있습니다. 길모퉁이마다 조악한 검문소를 설치하고 신분증을 검사해 투치인 것이 확인되면 그냥 죽이는 아주 간단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단순성이 가져다 준 놀라운 효율성이지요.


괴물이 된 국가시스템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악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두명의 악마와 수많은 평범한 복종자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인류의 오래된 지혜가 집적된 성경이, 세상을 움직이는 ‘정사와 권세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도 이런 위험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공포영화 속의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의 손발로 만드는 진짜 괴물 또는 시스템입니다.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창비, 352-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