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왜 한국은 아직도 일본과 화해를 하지 않습니까?

강산21 2010. 8. 9. 22:07

왜 한국은 아직도 일본과 화해를 하지 않습니까?

(1992년 대선 실패 후 영국으로 유학 중인 시기)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일본인 학생이 질문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많은 나라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나라들은 지금 종주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은 과거에 얽매여 아직도 일본과 화해를 하지 않습니까?”


장내는 순간 조용해졌다. 모두 내 입만 쳐다봤다.

“당신에게 되묻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많은 과거 식민 국가들과 사이좋게 지내는데, 일본은 왜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과는 사이가 나쁠까요? 그 책임이 한국과 일본 중 어디에 있을까요.


그럼 영국, 프랑스와 일본을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 명확해질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에 들어와서 한민족이 생명처럼 여기는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또 한국말을 못 쓰게 하고 역사를 못 배우게 했습니다. 날마다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큰절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은 식민지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독일과 일본을 비교해 봅시다. 두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똑같이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과거에 대해 철저히 사죄했습니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수십억 달러의 배상 또는 보상을 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어떠했습니까. 한국에 단 3억 달러를 주는 것으로 끝내 버렸습니다. 독일은 그들의 죄상을 어린이를 포함한 전 국민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시키지만 일본은 과거사를 은폐하며 사과하는 시늉만 내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 과거의 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은 전쟁에 진 것을 ‘패전’이라 시인하는데, 일본은 ‘종전’이라 부릅니다. 독일은 당시의 연합군을 ‘점령군’이라 했는데, 일본은 ‘진주군’이라 했습니다. 일본식대로라면 누가 전쟁에서 이겼고, 누가 항복했는지 모릅니다. 일본이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데 일본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반성을 하지 않는데 주변국 한국이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의를 의심하고 따져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렇듯 일본의 태도가 독일과는 확연히 다른데 어떻게 과거를 덮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의가 끝나자 일본인 학생이 찾아와 사과했다.

“정말 그런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우리 일본이 정책을 수정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삼인, 2010, 615-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