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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 <노무현이 꿈꾼 나라> 중에서.

강산21 2010. 8. 7. 11:02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 <노무현이 꿈꾼 나라> 중에서.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에 비해 훨씬 더 강하게, 그리고 임기 내내 좌우 양쪽으로부터 공격에 시달렸다. 보수 세력은 민주투사 출신의 성격이 강한 노무현 정권에 대해 더 우려했고, 반대로 진보 세력은 그만큼 기대가 컸던 탓이다. 김대중 정권 때는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해 보수, 진보 세력 모두 상당 기간 목청을 높이기 곤란한 처지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검찰이나 국정원 등 권력 기구에 대한 방치나 정당 분열로 일찍부터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져 버렸다.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홍보 능력도 신통찮았다. 또한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과 달리 IMF 같은 외부 세력의 뒷받침도 없었고, 반면에 구조조정을 일단락하고 헤게모니를 회복한 재계와 더불어 보수언론, 보수 관료, 부시 치하의 미국이 노 정권을 포위 압박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지 세력은 분열되고 반대 세력은 강력하게 결속해 있었고, 이런 제약 조건은 노 정권의 운신의 폭을 크게 제약하였다.


경제 상황을 보면 김대중 정권의 무리한 경기부양 정책의 부작용으로 대량의 신용불량자가 발생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였다. 여기다 카드 대란, 성장률 저하 문제가 부각되면서 노무현 정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였고 당면 현안 해결에 급급했을 뿐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데는 크게 힘을 쏟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 해도 부분 부분에서 자신의 이념을 구현하려는 노력은 엿보였다.


재벌 개혁, 금융 개혁과 관련해서는 한편으로는 상속, 증여세 포괄주의와 집단소송제를 실시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법 대선자금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정경유착을 상당히 해소한 것은 큰 공적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카드 대란에선 구래의 개발 독재식 수법에 의존했고, 금융관련법 개정에서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했으며, 정권 말기에는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하는 등 개혁 역행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이 제공한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을 받아들인 데서 보듯이 정책 운영에서 삼성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조세 정책에서는 보수 세력의 압력 하에 선거공약을 뒤집고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등 부유층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했다. 그런가 하면 부동산 투기 진정과 관련해선 부동산의 과세 표준을 대폭 현실화하고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하는 등 진보적 성향을 드러냈다. 정부 지출에서는 보육 등 복지지출 비중을 집권 기간 동안 20%에서 28%로 늘리는 사회민주주의적 정책도 시행했다.


노동 정책에서는 정권 초기에는 노사정위원회를 강화하고 선진적 노사 관계를 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철도파업을 계기로 정부와 노조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노조의 경직적 자세나 일부 대기업 노조의 부패가 정권의 노조기피증을 초래하기도 했으나 정부도 참을성이 부족했으며, 더욱이 대기업 정규직과 여타 노동자 사이의 분단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전략이 부재하였다.


노동자 사이의 분단 극복은 대기업과 부유층에서 세금을 더 거두어 그 돈으로 교육, 의료, 주택 같은 문제를 기업 복지가 아닌 사회복지로 해결함으로써 노동자 사이의 실질적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게 덴마크 식의 유연안전성(노동의 유연성, 소득의 안정성)과 통한다. 그런데 이런 근본적 접근에 관심은 갖고 있었으나 손을 대지 못했다. 다만 비정규직 보호법을 개정해 기간제의 사용을 제한했다. 당시 노동계에선 이 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괴롭힌다고 비난했으나 정작 이명박 정권이 이를 손대려 하자 저지에 나선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런대로 긍정적 효과를 갖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 생활이 특히 곤궁해진 것은 영세 자영업자 층이었다. IMF 사태에 따른 구조조정의 여파로 자영업자가 늘어났고, 소비 위축으로 매출이 부진해졌으며, 통신판매나 대형마트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선 사회보장 제도를 대폭 확충해 영세자영업으로의 진입필요성을 낮춘다든가, 선진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사회서비스업(교육, 보건 및 사회복지, 공공행정) 비중을 높인다든가, 임금 체게를 개편해 회사 퇴직 연령을 높인다든가 하는 근원적인 대책은 그다지 강구하지 못하고 ‘재래시장 활성화’ 등 지엽적인 정책을 내놓았을 뿐이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이전 정권 탓도 있고, 또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했으며, 노무현 정권 시기의 주택 가격 상승이 김영삼 정권 시기보다는 높지만 다른 정권에 비해선 높지 않다. 하지만 부동산 금융 체계의 정비가 늦었으며 정책의 일관성도 흔들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민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또 부유층에게는 종부세 때문에 지지를 상실해 버렸다.


대외 개방과 관련해선 한미 FTA 추진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개방 그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며,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뭔가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은 이해해 줄 수 있다. 다만 개방은 개혁과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IMF 사태와 같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사실 한미 FTA의 내용을 따져 보면 긍정적 효과는 불분명한데 부정적 효과가 만만찮은 것이다. 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비롯해 농업의 피해에 대해 정권 측이 그 심각성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게 시장만능주의의 표현이다.


남북한 경제협력에서는 노무현 정권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착실한 진전을 보였다. 남북 교역액이 크게 늘었고 특히 2004년부터 개성공단이 가동되어 수만 명의 북한인 근로자가 남쪽 중소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수파에선 퍼주기 운운하지만 남북 경제 협력으로 북한 인민의 삶이 개선된 것은 분명하며 남한 종소기업의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주고 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정권이었나” 김기원, 동녘, 2010. 4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