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 - <노무현이 꿈꾼 나라> 중에서.

강산21 2010. 8. 7. 02:25

김대중 정권의 경제정책


김대중 정권은 IMF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 등장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원래 이념을 제대로 펼치기보다는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정책이 중심이 딜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은 재벌, 금융, 공공, 노동 4대 부문의 구조조정과 개방이라는 대외적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의 경기 침체와 빈곤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부양책과 복지정책이 병행되었다.


먼저 재벌 구조조정은 과잉 투자 해소, 기업지배구조 개혁, 재벌의 국민경제 지배 개혁으로 구성되었다. 과잉 투자 해소를 위해선 빅딜, 워크아웃, 퇴출 조치를 실시하고 부채 비율 축소를 요구했다.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관련해선 소수주주권을 강화하고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다. 재벌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선 벤처기업을 육성하고자 했다.


여기서 빅딜 같은 조치는 전두환 정권이 시행한 중화학 투자조정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개발독재 정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벌 개혁 과정은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구자유주의 정책에 속한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의 재벌 개혁은 재벌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허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후퇴하기도 하면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렀다.


금융 구조조정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정리했고 금융감독 체계를 정비했다. 그리하여 금융자본의 과잉 투자 완화, 금융기관 재무구조의 건전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방지가 꽤 진전되었다. 다만 금융기관의 소유, 지배, 경영 구조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재벌에서처럼 금융기관 사외이사는 들러리의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외국 자본에 금융기관을 함부로 매각한다든가 이자제한법을 폐지하는 등의 시장만능주의 정책도 취해졌다.


공공 부문의 경우 국민들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인원 감축이 단행되고 일부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민영화 대상은 한국중공업 등 일부 거대 기업도 있었으나 대개는 소규모 기업이었으며, 시장만능주의 세력이 요구하는 식의 마구잡이 민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공공 부문에서는 시장 경쟁이 작동하지 않으므로 거기서의 처우에 대해선 민주주의적 견제가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공공 부문에서는 IMF사태를 거치면서 민간 부문과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이 문제에 대해서 김대중 정권은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노동시장의 공정경쟁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된 것이다.


노동 부문의 구조조정은 노동시장과 노사 관계 두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노동시장 차원에서는 IMF의 요구에 따라 정리해고제를 조기 실시하고 파견근로제를 도입했다. 이는 1987년 이후 강력해진 노동계에 대한 자본의 반격이란 점에서 시장만능주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정리해고제는 대기업 노조의 반발에 부딪혀 시행이 어려웠고 IMF사태 이후 비정규직 증대는 파견근로보다는 기간제 근로자와 용역의 증가에 따른 것이었다.


노사 관계 면에서는 김대중 정권은 민주노총과 교원노조를 합법화하고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해 노동시간 단축 등 몇 가지 합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는 복지주의(사회민주주의) 정책에 속하는 것인데, 노사정위원회의 경우 일부 합의 사항을 정부가 지키지 못하고 또한 민주노총이 내부 강경 세력의 반발로 탈퇴하면서 위상이 추락해 갔다.


김대중 정권의 대외개방 정책은 외환자유화, 무역자유화, 자본자유화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IMF의 강력한 요구로 단행된 것으로 시장만능주의로 비판받을 소지가 가장 큰 분야다. 물론 대외개방은 대세일뿐더러 그 자체는 시장의 확대로서 시장만능주의라 할 수 없다. 또한 보수 세력이 정략적으로 제기한 국부유출론이나 일부 진보 세력이 퍼뜨린 한국 경제의 중남미화 운운도 지나친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의 개방은 자본과 노동을 모두 포괄하지도 않으며, 자본의 글로벌화에 대한 세계 정부와 세계 시민사회의 민주적 견제도 미미하다. 따라서 개방에서는 득실을 따지고 범위와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데, 김대중 정권은 달러 부족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달러를 들고 오는 외국자본에 대한 일종의 우상숭배에 빠진 감이 없지 않다. 은행과 같은 주요 금융기관을 쉽게 외국 자본에 넘긴다든가 외환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게 그런 예들이다.


한편 김대중 정권은 IMF사태에 따른 빈곤층을 구제하고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기 위해 사회복지를 확충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한 것이 이를 대표한다. 또한 도시의 자영업자도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하여 전 국민 연금 시대를 열었으며 고용보험의 적용 범위도 확대하였다. 이는 물론 서구 복지국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적어도 방향성은 거기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무리한 정책을 시행했다. 신용카드 남발을 방치하고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이는 소비 증가와 건설 호황을 일으켜 당장의 국민소득 증가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차후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정권이었나” 김기원, 동녘, 2010. 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