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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운명이다』출간 이후 궁금한 몇 가지 말과 글

강산21 2010. 5. 1. 21:13

〇 노무현 전 대통령님 자서전 『운명이다』(노무현재단 엮음, 유시민 정리, 2010, 돌베개) 가 출판된 지 5일이 지났습니다. 책이 출간된 후 더 궁금해 하시는 것들을 따로 말씀드립니다.

 

 

『운명이다』출간 이후 궁금한 몇 가지

 

1. 『운명이다』는 왜 자서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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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은 돌아가시기 전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씀하셨죠. 유지를 이어 미완의 원고를 마무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평소 남기신 글, 인터뷰, 영상과 녹음자료를 유고(遺稿)라 생각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은 당시의 지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메웠습니다. 여사님과 문재인 변호사님, 대통령님과 가까웠던 여러 참모들이 사실관계를 검토해주셨고요. 학자의 미완논문을 제자들이 출판하거나 소설가의 유작을 가족 중 누군가가 마무리하는 것처럼, 대통령님의 유고를 제가 자서전 형식으로 마무리했다고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처음 자료를 보면서 글의 형식을 어떻게 가져갈까 고민하다 자서전 형식이 떠올랐습니다. 대통령님 생각을 전달하려면 대부분의 문장을 인용해야 하는데 논문이 아닌 글에서 3인칭 서술문과 1인칭 인용문을 번갈아 오가자니 글 흐름도 끊기고 몰입이 안 되어 형식적 완결성이 현저히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대통령님 생각을 필자의 간섭 없이 전달하기에는 1인칭 시점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죠.

제가 1인칭 시점의 자서전으로 쓰면 어떻겠냐고 여사님께 여쭈니 여사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 (^^;) 그래서 “제가 영매가 되어 대통령님 목소리를 불러 오는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고개만 끄덕이시면서 “아, 예. . .”하고 가만히 미소 짓길래 허락하신 거라 생각하고 자서전을 집필했습니다.

영매가 되어 보낸 지난 6개월이 IMG_5332.jpg 쉽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님이라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지, 이런 상황이었겠지, 하고 내적대화를 나누다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아치면 잠시 글을 멈추곤 했습니다. 저와 생각이 똑같지는 않았던 대목,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 돌아보니 그때 그 말씀이 이런 뜻이었구나, 다시 돌아보게 되는 장면들.

처음에는 대통령님이 남기신 모든 자료를 연대별로 긁어모았습니다. 그 다음은 돌아가시기 전, “이제 실패와 좌절의 회고록을 써야겠다”고 말씀하신 순간의 시점으로 돌아가 전체를 재구성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매 순간 그 당시의 대통령님 심정을 상상하면서 대통령님의 말씀 자체는 고치지 않되 감정전달이 좀 더 되도록 다듬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만든 초고를 몇 분에게 보내 검토를 요청하니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제가 집어넣은 몇 개 문장을 정확하게 짚어내 빨간줄을 그어 답을 보내더군요. 빨간 줄 아래에는 이런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대통령님의 문장이 아닙니다.”. . .그리고 수정 원고를 첨부한 이메일에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물론 저(윤태영)도 대안은 없습니다.”(^^;;)

그래서 또 고민하고. 다시 수정하고. 다시 여러분들과 검토하고. 또 수정하고.

처음에는 대통령님 말씀과 제가 끼워 넣은 설명이 따로 움직였는데 차츰 하나로 합쳐져 제 문장이 도드라지지 않고 대통령님 말씀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단문으로 경쾌하게 나가던 제 문체가 단문으로 단호하게 나가는 대통령님의 말투와 차츰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말과 글이 녹아 들어가면 생각과 감정도 그렇게 되나 봅니다.

원고를 최종 마무리하던 마지막 보름, 마지막 1주일. 대통령님이 그 순간 어떤 마음이셨을까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영매 노릇하기가 극단적으로 괴로웠습니다. 마지막 원고마무리 때 만났던 이창동 감독이나 문성근 선배 등이 “빨리 그 원고를 털어야지 그러다간 어디 치료받으러 갈 일 생기겠다”고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원고를 마무리하는 과정도 슬펐지만, 이 원고를 끝내면 이제 대통령님과 정말 이별이겠구나, 영매 노릇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더 슬펐죠. 뭐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글 쓰면서는 늘 대통령님을 만나는 기분이었으니 따뜻하고 다정한 슬픔과 분노와 좌절의 슬픔이 동시에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자서전>을 집필했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새삼, 1인칭이 아니었으면 설명하기 어려웠겠다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대통령님이 남기신 말과 글에는 없지만 삶에는 있었던 장면들. 원고를 검토하던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던,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그랬을 것이다”라는 부분들이요.

예를 들면 마지막 대목이 그렇습니다.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해가 떠오르는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출 시간이 지났지만 두터운 구름과 자욱한 아침안개 때문에 아직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태양이 솟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다리를 곧게 펴고 섰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 마을의 정겨운 산과 들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평화로웠다.(335쪽)

 

2. 『운명이다』의 인세는 누구에게 가나요?

봉하마을에 계신 권양숙 여사님께 갑니다. 대통령님 자서전이니 대통령님 유가족을 대표하여 여사님께서 인세를 관리하시는 게 맞죠. 노무현 재단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상의하여 결정하고 여사님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권양숙 여사님은 <사람사는세상 봉하마을> 재단을 관리하고 노무현 재단을 통한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여사님께 잘 전달되었으면,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3. 『운명이다』의 저자 사인회나 출판기념회는 언제 하나요?

 

"차분하고 절제된 추모 분위기 속에 행사를 치르겠다."

노무현 재단 문재인 실장님의 말씀입니다. 저 역시 공감합니다.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1주기 추모행사들이 6.2지방선거 선거운동 기간과 맞물려 더 조심스럽습니다. 자서전의 저자는 내용상 노무현 전 대통령님이니 저자 사인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자서전의 출판기념회도 같은 이유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콘서트나 전시회 등 노무현 재단에서 주관하는 다른 추모행사가 많으니 그런 자리를 통해 그리운 마음을 달랬으면 합니다.

 

사인을 해달라고 책을 내미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야박하게 거절은 못하지만, 『후불제 민주주의』나 『청춘의 독서』때처럼 저자사인회를 따로 가질 생각은 없습니다. 책을 쓸 당시에도 대통령님 책을 대신 쓴다고 생각했지 제 책을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4. 『운명이다』의 양장본과 반양장본의 차이점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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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양장본 표지는 딱딱하고 반양장본 표지는 말랑말랑하죠.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가까운 분들 중에서는 두 개를 다 산 분들도 많더군요. 양장본은 책꽂이에 꽂아두고 반양장본은 전철타고 다니면서 읽는 용으로.

가격차이가 있다고 책 읽는 분들을 차별하면 안 되니까 본문 내용과 사진은 전부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양장본은 특별히 소장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20컷 정도 별도 화보를 실었고 케이스도 따로 제작했습니다.

양장본 케이스가 세로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 의논할 때는 가로로 열리는 편이 보관도 더 쉽고 보기에도 좋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북디자인을 맡으신 분이 "김대중 대통령님께서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세로로 열리는 게 더 어울린다는. . .이상한 주장을 계속 하셔서 결국 존중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역시 다 만들어진 것 보니 전문가 의견대로 가로로 열리는 편이 좀 더 예의 있게 보이네요.

케이스를 열고 책을 볼 수 있게 한 건 <부활절 계란>을 연상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표지와 케이스 색상을 흰색과 노란색으로 해서 열고 들어가면 다시 흰색과 노란색이 연속으로 보이도록 만들었죠. 그런데 책을 사신 분들 중 <부활절 계란>을 깨고 먹는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몇 분이나 될까요?. . .^^;;;. . .혼자만의 생각이라 해도, 부활을 말로 하기보다는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표지의 흰색, 검정, 노랑은 제가 일부러 정한 색상이 아니라 대통령님 돌아가시고 거리의 시민들이 보여주셨던 색상입니다. 다른 걸 선택할 수도 없고 선택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서점에서 보니 반양장본 표지가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5. 『운명이다』의 양장본이 한정본이라는데 언제까지 살 수 있나요?

양장본은 지금 2쇄 들어갔는데 3쇄까지만 찍고, 이후는 봉하마을 기념관에서만 판매할 계획입니다. 대략 3만부 선에서 서점판매는 끝나고 이후는 특별히 봉하마을을 찾은 손님들만 기념으로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 한 번 있는 서거 1주기. 남달리 그리워하는 분들을 위해 한정판 애장본으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반양장본은 일반서점에서 수량 제한 없이 계속 판매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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