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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주의 (유시민 강연록 중에서)

강산21 2010. 8. 7. 02:28

최대주의 (유시민 강연)


“나는 문성근이 좋은데 넌 왜 이해찬이 좋다고 우기는 거야”하면서 주먹다짐하지는 않죠. 그리고 매일 친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넌 이해찬 좋냐, 난 문성근 좋다” 이러면서 절교하진 않죠? 취향이 다 다르잖아요. 다양성을 인정해주잖아요.


그런데 정치로 오면 이게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저는 ‘최대주의’라고 표현합니다. 어떤 교수님이 책에 쓰신 용어를 제가 배워서 가져온 겁니다. 최대주의(maximalism)는 너와 내가 동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 똑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열 개의 중요한 쟁점이 있을 때 1번부터 갑니다. “우리 합의해”하면서 1번 오케이, 2번 오케이, 3번 오케이... 그렇게 가다가 7번에서 “나는 a 너는 b” 이러면 “너는 적이야, 내부의 적이 더 무서워, 내부의 적부터 척결해야 해”하면서 분파 투쟁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저쪽 집단은 생각들이 모두 달라도 이익만 서로 맞으면 다 거래하고 단결하잖아요. 이쪽은 이익이 아니라 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무엇이 의인가, 그 의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리면 적대 진영에 대한 투쟁보다 내부의 투쟁이 더 치열해집니다.


이런 일이 역사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스페인에서 1936년에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주정부를 뒤집고 무력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 최후까지 항전한 곳이 바르셀로나입니다. 아시겠지만 스페인의 북동부 지역에 있는 곳이죠. 카탈루냐 왕국의 수도이고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당시 프랑코 세력과 대립했습니다. 카탈루냐 쪽은 해양세력이고, 마드리드는 끊임없이 권력을 내륙으로 집중시키는 지역이라 연상하시면 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인지도 대략 연상하실 수 있겠죠. (웃음) 그러니까 인종도 다르고 문화도 언어도 다릅니다. 최후까지 바르셀로나를 프랑코가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어느 날 무혈입성했죠. 어떻게요? 그 안에서 마르크시스트들과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져 서로 총질하는 바람에 총알도 다 떨어지고 서로 다 죽여서 결국 프랑코가 무혈입성합니다.


원래 진보 진영, 가치 추구를 중시하는 세력 쪽에서는 내부 다툼이 심합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추종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이것은 매우 냉소적인 표현인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보는 연대하는 기술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분열이 아닙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조직을 따로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연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 못합니다.


연대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건데 연대를 막는 우리 사고방식의 가장 큰 결함이 최대주의입니다. ‘네가 그럴 줄 몰랐어. 나 지금까지 너 되게 좋아했는데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다니 난 이제부터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한미 FTA를 추진하다니, 배신남!’하면서 지지 철회하고 탈당하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와서는 “그럴 줄 몰랐다”, “신자유주의자” 이렇게 비판합니다.


참여정부에서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분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우리들 사이에서 토론하는 것은 이라크 파병, 대추리 문제, 한미 FTA밖에 없었습니다. 일곱 개는 똑같은데 나머지 세 개를 가지고 신자유주의자라고 하면서 싸우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최대주의입니다.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2010) 가운데 유시민 강연 내용 중. 6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