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캐나다 교포 주부, 언론운동에 2억 쓴 이유

강산21 2009. 2. 11. 11:05

설아무개씨 “시민사회의 진보언론 배포운동에 감동”
2009년 02월 11일 (수) 00:45:33 김상만 기자 ( hermes@mediatoday.co.kr)
지난 설 연휴.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각각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개인이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1억 원어치를 구매하겠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자신을 캐나다에 사는 교포이며 평범한 주부라고 밝힌 익명의 구매자는 며칠 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개설된 계좌로 미화 7만4000달러, 원화로 1억 원을 보내왔다.
두 신문에 각각 1억 원씩, 모두 2억 원어치의 신문을 구매한 사람은 다음 아고라에서 ‘토론토 아줌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캐나다 교포이자 주부인 설아무개(48)씨다.

   
  ▲ ‘진실을 알리는 시민’ 회원들은 지난해 9월27일 부산 서면, 사직동, 남포동 등에서 경향·한겨레 3500부를 배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사진제공=진알시  
 
지난 촛불정국에서 보수언론의 한계를 느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진보언론 무료배포 운동모임 ‘진실을 알리는 시민(진알시)’의 회원이기도 한 설씨는 구매한 신문 전량을 진알시에 기부했다.
그는 지난 7일 이뤄진 전화 인터뷰에서 거액의 돈을 신문 구매대금으로 내놓은 것에 대해 “살아보니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출근길에 진보언론 배포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 아고라를 통해 알게 되면서 이들에게 감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번 “돈의 액수보다 진알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 대해 써달라”고 주문하기로 했다.

촛불정국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가끔 상점 등에 배달되는 한국신문에서 ‘국내정세가 이렇구나’라고 알고 있었을 뿐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한국을 떠난지도 20여 년이 지난 데다 당시 독재정권에서 느꼈던 공포심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억대의 신문구매 의사를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전달하면서 이들 신문사 사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가 최근 국내정세를 보면서 느낀 복잡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전형적인 386 세대인 저는 박정희 정권에서의 대학생 데모와 전두환 쿠데타로 인한 광주학살, 노태우, 김영삼 정권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민주항쟁의 역사의 현장에 두루 살았었지만 최대한 외면하고자 고개 돌렸던 비겁자였다. …독재정권, 공안정권이 무엇을 의미하는 잘 아는 저로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처참한 시국으로부터 외면하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가 공포심을 이겨내고 진보언론 배포운동에 관심을 갖는 등 일종의 정치 참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들이 자주 들어가는 포털 다음에서 우연히 알게 된 토론사이트 ‘아고라’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 상황에 까막눈이었지만 다음 아고라에 올라오는 글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을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대통령을 비난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아고라에서는 온갖 정치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며 “아고라에서 ‘진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봤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원으로 진알시는 설 연휴를 기점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50만 부를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기부가 촉매제가 된 것인지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개인이나 단체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는 “아침 8시 출근길에 만나 신문을 배포하려면 새벽 5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한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도 지금까지 이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건 감동적인 일”이라며 “진알시 운동이 언론지형을 바꾸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최초입력 : 2009-02-11 00:4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