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불법 시위와 불법 진압 / 김기창

강산21 2009. 2. 3. 17:07

불법 시위와 불법 진압 / 김기창
기고
한겨레

»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
불법 시위가 불법 진압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여러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용산 참사를 두고 점거농성자들이 먼저 법을 어겼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법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거나, 법률을 잘 모르는 일반인을 현혹하여 불리한 여론을 잠시 모면해 보려는 시도일 뿐이다. 점거농성자들이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 시위를 진압할 근거부터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의 유일한 쟁점은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경찰력 행사가 적법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느냐이다. ‘배후’가 있었다느니, ‘불순한’ 제3자가 개입한 시위였다느니 하는 주장은 경찰력 행사의 적법성에 대한 핵심적 논의를 비켜가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설사 ‘배후’가 있었다 하더라도, 시위의 의도가 이른바 ‘불순’했다 하더라도(과연 어떤 시위가 ‘순수’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경찰력 행사에 언제나 당연히 요구되는 비례성·균형성과 최소성을 무시할 근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쇠파이프와 전동그라인더로 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투입된 뒤에는 경찰이나 농성자나 모두 격렬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기 전에도 농성자들이 격렬한 폭력을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있었는지, 농성자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상응하는 비례적 진압 수단이 실제로 필요한 시점에 동원되었는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경찰력 행사의 일반 법리와 대테러 작전의 법리는 같지 않다. 테러는 민간인에 대한 막대한 피해를 낳는 것이므로 ‘선제 대응’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테러가 실제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테러 발생이 임박했다는 확실한 첩보에 근거하여 선제 대응을 감행함으로써 그 발생을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산 농성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려는 견해는 어처구니없다. 농성자들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는 것이 아니었다. 농성자들의 유일한 목표는 재건축 일정을 지연함으로써 시행사나 재건축조합에 재정적 부담을 가하여 일말의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소유자들과는 달리 턱없이 불리한 보상체계의 제도적 희생자들인 세입자들은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적정 보상을 확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시공 일정을 지연하는 방법으로 보상금 협상을 시도하던 세입자들이 마치 테러리스트나 되는 양 경찰은 ‘선제 대응’을 하기로 선택한 것 같다. 선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일반 시민의 인명에 막대한 피해가 생길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시행사와 재건축조합이 세입자들에게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덜 주고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편들어 주기 위하여 경찰 특공대 투입을 결정하고 선제 대응을 감행한 것이라는 엄중한 평가에 경찰은 과연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조기 진압을 위해 특공대를 투입했다는 말은 장기 농성이 시행사의 이윤 감소를 가져올까 염려했다는 고백처럼 들릴 수도 있다.

 

3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참혹한 시신을 앞에 두고, 시위가 불법이었다느니, 제3자가 개입했다느니 하는 핑계를 댄다고 해서 이번 용산 참사에서 드러난 공권력 행사의 공의롭지 못함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죽음 또한 부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진압작전 때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나 매뉴얼에 따른 병력 투입 지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젊은이 또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의 피해자다. 경찰 특공대는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양성한 소중한 정예인력이다. 재건축조합이나 시행사의 돈벌이를 위해 함부로 투입하고 희생시켜도 좋을 ‘소모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찰 수뇌부는 대대적인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