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시론모음

양성평등, 결국 철학의 문제

강산21 2009. 1. 30. 18:38

양성평등, 결국 철학의 문제
2009-01-30 오후 6:16:42 김성현(광명여성의전화 감사)  http://blog.daum.net/san05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여성부로 규모와 역할의 축소가 이루어진 바 있다. 애초에는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자 형태는 남기되 역할은 거의 없는 한 부처로 만든 것이다.

 

주요 기능을 다른 부처에 내주고 나니 부처는 있는데 주요한 정책은 없는 기형적 결과가 초래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요 역할이 다른 부처로 넘어가고 나니 할 일도 별로 없어서 2007년도 여성가족부의 예산이 1조 1994억원에서 2008년 539억원으로 1년만에 95.5%가 줄어든 결과를 낳았다. 1년만의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그 폭이 크다. 간단히 정리하면 여성부는 남았지만 여성정책은 실종되었다.

 

한 부처의 부침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은 여성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철학에 근거한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것이다.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행동의 주체가 개인일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주체가 정부라고 한다면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1년 만에 여성정책이 30년 전으로 후퇴한 느낌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안타까움이란... 집행부처가 아닌 정책협력부처로 전락한 지금의 모습은 이 정부의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기초를 드러내 준다.

정부 부처의 일이라는 것이 어느 한 부처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바른 집행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무 부처가 있더라도 유관 부처의 협조와 철학의 공유가 전제되어야 성과를 거둘 만큼의 동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협조를 해야할 그 어떤 사업도, 구체적 시도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저 입으로 외치는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진보적 의제를 백안시하는 현 정부의 철학에서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양성평등은 여성을 더 유리하게 하려는 시도가 분명히 아니다. 이것은 사람을 모두 사랑하는 입장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의 불리함과 힘겨움은 다른 한 쪽의 힘겨움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균형을 잡자는 것이 평등인데 기존에 누리던 이들은 그것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오래 걸리는 일이며 새로운 세대에게서는 이런 모습이 발견되지 않도록 양성평등 정책과 집행이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사회적 매카니즘을 균형잡힌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의 어려움은 지난 수 십 년 간 보아왔듯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성과물을 내어놓을 수도 없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어느 시기인가부터 결과물을 보기 시작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적절한 예인지 걱정이지만 환경문제와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장 눈앞에 개선된 환경은 내어놓을 수 없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아주 절실한 것이기에 꾸준히 노력해야 할 과제인 것처럼 말이다.

 

성인지적 정책수립과 성인지적 예산의 집행은 그래서 꾸준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집행되어야만 한다.

'성인지적 예산'이란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정부의 수입과 지출의 효과를 평가하는 방법으로, 예산 배분이 남녀 간의 경제, 사회적 기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기여도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들의 요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함께 사회 각 영역에서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되는 성별 분리 통계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방향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데 양성평등에 대한 철학이 다르면 기존의 연구와 진행 내용도 바뀐다는데 있다. 여성가족부 존치 문제와 역할 축소 등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말이다.

 

난 우리 사회가 균형잡힌 사회이길 간절히 바란다. 그 어떤 차이와 차별도 전체 공동체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차이와 차별은 극복하라고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이지 그것을 누리던 이는 계속 누리고, 당하던 이는 계속 그렇게 지내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차이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적 기반을 공고히 하며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과제 앞에 선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히 자각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 믿는다. 물론 정부의 자각이 우선적으로 절실하다. 사회적 균형추를 개인이든 집단이든 한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은 후손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이다. 부끄러운 모순적 사회를 후손에게 물려 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