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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수’의 변화를 보고 싶다 / 김삼웅

강산21 2009. 2. 2. 13:45

[시론] ‘보수’의 변화를 보고 싶다 / 김삼웅
시론
한겨레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용산 참사를 지켜보면서 이명박 정권과 보수세력의 국가경영에 참담함을 느낀다. 농성 25시간 만에 무지막지하게 물리력을 동원한 이른바 ‘법치’와 반서민적 국정운영은 집권 1년을 경험한 국민에게 결코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 변통이 일상화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보수세력은 오매불망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다. ‘진보의 무능’을 질타하면서 집권했으면 진보보다 잘해야 정권교체의 명분도 서고 자신들이나 국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도 된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민족주의가 강한 편이다. 일본의 보수우익만 해도 그렇다. 한국과는 독도, 러시아와는 북방4도, 중국과는 센카쿠열도, 대만·베트남과는 난사군도 등 영토 분쟁을 일으키면서 영토 야욕이 식을 줄 모른다. 최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의 “북한은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란 망언에 정부와 보수세력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우리 영토 문제에 대한 중대한 망언인데도 침묵한 배경은 무엇일까. 북한이 미우니까 중국이 합병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깔린 것인가.

 

걸핏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거론하면서 헌법의 영토 조항,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절반을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일본의 비중 있는 공직자의 발언에 침묵하는 보수는 보수의 자격이 없다. ‘식민지근대화론’을 헌법의 가치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북한이 망하여 중국이나 미국의 지배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법 정신이고 국가의 ‘정통성’을 지키는 일일 터이다.

 

올해 9월4일은 일제가 ‘간도협약’을 통해 우리의 고토를 중국(청국)에 넘겨준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과 일본은 1952년의 중-일 평화조약에서 “1941년 12월9일 이전에 일본과 중국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전쟁의 결과로서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1909년에 맺은 간도협약도 당연히 무효가 된다. 역사의식이 있는 보수라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영토 문제는 100년이 한 고비가 된다고 한다.

 

정부는 특정 재벌의 이익이 걸린 건축사업을 서울공항 활주로의 각도까지 변경하여 허가할 방침이다. 공군은 6년 전부터 반대해 오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에 보수는 왜 침묵하는가. 안보에도 이중 잣대인가. 정부는 5월에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한다고 한다. 백범의 초상이 담긴 10만원권 지폐 발행은 취소된 것 같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홀대하고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기리겠다는 보수세력의 몰역사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재벌과 족벌신문에 공영방송을 나눠주려는 언론관련법 개정 음모는 과거 독재정권의 안기부·기무사·검찰을 동원한 공안통치의 방식에 따라 검경과 족벌신문, 땡전 방송에 의존하려는 수법이다. 보수는 민주적 국정운영에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경제논객 미네르바를 체포하고 사이버 모욕죄로 입을 막으려 서두르는 보수세력의 의도는 한마디로 언론 통제 또는 언론 길들이기다. 족벌신문의 충성, 여기에 방송을 장악하고 인터넷을 규제하면 아무리 실정을 거듭해도 정권 유지가 가능하다고 믿는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해 망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건전한 보수가 있어야 건강한 진보가 가능하다.

 

보수는 국정운영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물리력·일방통행 식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힘들다. 민주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민주적인 가치가 존중받으며, 동포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외국에는 주권국가의 자주성을 갖는 그런 보수가 보고 싶다. 용산 참사에 ‘폭력시위가 책임’이라는 몰상식을 접고 고인들에게 국화 송이를 바치는 겸손을 보일 수는 없는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