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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정 민영화 3대 차이점

강산21 2008. 9. 12. 14:11

한.일 우정 민영화 3대 차이점


우정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본을 예로 든다. 정보통신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한 민영화 방안도 일본 모델이고, 인수위가 민영화를 앞당기라고 재촉하면서 제시한 사례 또한 일본이다. 언론에서 우정 민영화를 다룰 때도 일본 사례는 빠지는 법이 없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의회해산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 추진한 우정개혁을 쉽게 떠올리는 것이다. 요컨대 일본에서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인식의 오류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우정사업 환경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사실은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다른만큼 민영화의 파장과 의미 또한 전혀 다를 수밖에 없으나 한 바구니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먼저 규모를 보자. 민영화 이전 일본의 우정공사는 문자 그대로 거대 공룡이었다. 정규직원만 26만 명이 넘고, 보유자금은 예금과 보험을 합쳐 360조엔이었다. 어낙 천문학적 금액이어서 머릿 속에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다. ,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일본의 4대 은행, 4대 생명보험회사 자산을 합친 것보다 우정공사 한 곳의 자산이 더 많다. 전체 예금과 보험의 60퍼센트 가량을 점유한, 일본 최대 금융기관이 바로 우체국이다.


반면 우리의 우정사업본부는 민간사업자와 견주어 예금에서 7, 보험에서 5위다. 일본에선 "시중의 돈을 우체국이 싹쓸이해간다"는 비판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우리에겐 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시중은행과 보험회사들이 "우체국이 정부의 지급보증과 면세를 무기로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 때 미국 측에서 서민금융이라는 차원으로 양해하고 넘어간 사안이다.


다음 우체국의 위상을 살펴 보자. 얼마 전까지 우리는 술자리에서 빈 잔을 앞에 놓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우체국장'이라고 했다. 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힘있는 기관장은 잔 비우기 무섭게 누군가가 따라주지만 우체국장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빈 잔이 그대로 있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힘 없는 우체국장을 상징하는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체국장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70퍼센트의 우체국을 국가가 아니라 지역 유지가 소유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우정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국가공무원 신분이지만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임용되며 대대손손 세습할 수 있다. 지역 유지로서 선거 때는 자민당의 집표원 역할도 한다. 이들이 좌우하는 표가 지역구별로 3만 표쯤 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러니 정치인과 결탁이 없을 수 없다. 이들의 지원을 받는 의원들이 바로 '우정족'이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민영화 법안이 자민당 내에서조차 반대에 부딪힌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정 밍영화가 갖는정치 사회적 함의를 보자. 일본은 우정 민영화를 메이지 유신 이래 대개혁이라 부른다. 금융산업에서부터 정부 관료 및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철옹성처럼 단단한 기득권 집단을 깨부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의 체신부에 해당하는 우정성이 우정청으로 격하된 것은 2001. 2004년 우정공사가 되었다가 200710월에서야 우정지주회사로 바뀌었다. 우정청에서 민영화 단계에 이르는 데 7년 걸린 것이다.


반면 우리는 우정사업 민영화가 거의 공론화된 적이 없다.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우정사업본부 조직이 방만하고 비효율적이니 민영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본 적이 있는가. 신문기사 검색사이트에서 10년치 기사를 뒤져도 그런 글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박재완 정무수석은 인수위 시절 정부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개혁"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를 공사화해 직원 32천면을 민간인으로 돌리면 역사상 최대 규모로 공무원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자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우정 민영화가 '구조개혁의 집대성'인 반면 한국의 우정 민영화는 '공무원 수 줄이기'차원에서 추진된다는 결정적 차이를 드러낼 뿐이다.


<우체국 이야기> 이종탁, 황소자리, 2008, 184-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