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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위험은 확률로 계산할 수 없다

강산21 2008. 8. 29. 16:48

위험은 확률로 계산할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흥미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패널에게 한 청중이 “댁은 광우병이 걸린 소의 고기를 먹겠는가?” 물었더니, 패널이 “먹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청중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는다고 반드시 광우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이 확률이 얼마인지 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상당한 수의 광우병 소가 오랫동안 유통된 영국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와 소-인간 사이에 있는 종간 장벽 등을 고려해서 그 확률을 높게는 수천분의 일, 적게는 수천만분의 일로 잡기도 한다. 수천만분의 일이라는 확률이 만약에 옳다면 광우병에 걸린 소의 경우에도 수천만번을 먹어야 확률 1로 광우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인 800만분의 1,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인 100만분의 1보다 훨씬 더 적은 확률이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임의로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이보다 훨씬 더 적다. 일본의 어떤 이는 이를 40억분의 1로 잡았다. 우리나라의 한 공무원은 이를 두고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하고 환호하다가 벼락에 맞아죽을 확률과 같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산 쇠고기를 무서워하는 우리 국민은 과학에 무지한 채, 이성이 실종되고 유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괴담과 선동에 속는 이들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1969년 미국의 엔지니어 C. 스타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죽을 확률이 사냥을 하거나 스키를 타다가 죽을 확률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훨씬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베트남전에서 사망할 확률이 오토바이를 타다 죽을 확률 정도밖에는 안되지만 사람들이 이 둘에 대해 느끼는 위험은 천지차이였다. 그는 사람들이 스키, 사냥, 오토바이를 ‘자발적’으로 택하는 데 반해서,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베트남전에 징집되는 것은 비자발적이라는 차이를 발견했다. 즉 사람들은 자발적 위험의 경우에 훨씬 높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었다.


스타의 논리는 위험 인식에 대한 숱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이후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은 보통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위험이 자발성의 변수 외에도 위험의 원인에 대해서 모르는 정도, 피해의 끔찍함, 노출된 사람의 숫자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것을 밝혔다. 사람들은 비행기 사고나 벼락을 끔찍할 정도로 두려워 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이제 이러한 사고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런 위험에 노출된 사람도 소수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로빅이 지적한 세 가지 기준으로 보면, 광우병과 원자력 사고가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위험이다. 이는 확률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는 오랜 위험 연구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과학자나 전문가는 광우병 같은 경우 확률로 위험을 계산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은 시민이 위험을 확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재앙의 정도, 통제 가능성, 형평성, 후속 세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총체적으로 지각하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대화의 의지, 투명한 정보 공개, 신뢰 구축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문가는 전근대적인 과학 개념을 운운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총체적 공포를 무지와 선동의 결과로 몰아간다. 과학에 대해서 조금 아는 사람들은 광우병 확률을 계산해서 각종 희귀한 병보다 광우병에 걸려 죽을 확률이 훨씬 더 적다고 말한다. 시민과 대화하려 하기보다는 시민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태도가 위험을 증폭하고 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확률교육이 아니다. 위험은 정상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으로는 설명도 되지 않는다. 지금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하나만 아는 전문가들이 과학의 이름을 걸고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홍성욱, 동아시아, 2008, 165-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