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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육식과 광우병에 대해 다시 생각함

강산21 2008. 8. 30. 13:13

육식과 광우병에 대해 다시 생각함


19세기 중엽까지 사람들은 채식 위주로 식사를 했다. 고기는 귀하고 비쌌다. 서구 사회의 경우 이 시기 평균 식비의 90%는 밀, 귀리와 같은 곡식을 사는 데 쓰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식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종주국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의 하나로 육식이 장려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저렴한 가격으로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과학적 축산이 장려되었고, 미국에서도 고기를 싸게 수입하기 시작했다. 고기의 저장과 운반 기술이 급속히 발전했으며, 미국의 도축장에는 자동화 기계가 도입되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미국에서 도살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은 뉴욕으로, 영국과 파리로 운송되었다.


육류 소비는 1950년 이후에 급증했다. 패스트푸드가 발달하면서 고기의 소비가 지난 50년간 4배나 뛰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싼값에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비싼 대가를 수반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우선, 동네 풀밭이나 뒷산에서 소가 풀을 뜯어먹던 시절에는 집에서 기르던 가축을 도살하는 행위와 그 고기를 먹는 행위가 분리되지 않았다. 고기를 먹을 때, 사람은 동물을 죽여서 먹는다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했다. 그러나 깨끗한 슈퍼마켓에서 잘 포장된 선홍색 고기를 고르는 요즘에는 이러한 성찰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고기가 어떻게 사육되고 도살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사회가 '문명화'하면서 동물의 도살과 육류의 가공만이 아니라 가축의 사육도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는 '공장'으로 옮아갔다.


두 번째 문제는 값싼 '고기'의 도래가 식량문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가축이 곡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육류의 생산이 늘면서 곡물의 소비가 증가했다. 지금 전 세계 곡류의 36%가 가축의 사료로 쓰인다. 이것은 2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고기 소비가 제일 많은 미국에서는 곡식의 70-80%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고기 1칼로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식 11-17칼로리가 소모되기 때문에, 육식은 채식보다 2-4배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축이 물을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동물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에는 같은 양의 식물 단백질을 생산하는 것보다 약 100배의 물이 필요하다.


옛 소련은 고기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면서 가축의 사료로 곡물을 대량 수입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세계 제2위의 곡물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멕시코는 1960년에 5%에 불과하던 곡물 경작지가 1980년에는 23%로 늘었는데, 그 대부분은 가축의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멕시코의 가난한 계층이 먹는 옥수수, , 밀을 생산하는 경작지는 오히려 줄었다. 지금 멕시코에서 나는 곡물의 30%는 가축에게 돌아가는 반면, 인구의 22%는 굶주리고 있다. 이렇게 사육된 고기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게 돌아간다.


1950년대 이후 육류 소비가 급증하고 가축이 먹어치우는 곡류의 소비가 증가하면서, 서구의 축산업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축산업자는 닭의 배설물을 관찰한 결과 사료의 25%가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배설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닭의 배설물을 모아 말려서 다시 소와 닭의 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곡물 경작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국에서는 도살한 소에서 고기를 발라낸 뒤에 남은 내장, 뼈를 가지고 가축 사료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육골분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에 단백질을 많이 섭취한 소가 우유도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포함한 육골분 사료의 소비가 급증했다. 곧바로 1985년에 광우병으로 죽는 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수만 마리의 소가 광우병에 감염되었으며 그 원인이 육골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영국에서 육골분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미국에서도 육골분 사료의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닭의 배설물을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은 관행대로 행해졌다. 이것은 200712월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비로소 금지되었다. 그 이유는 닭의 사료에 육골분이 포함되어 있어서인데, 광우병에 걸린 소를 모른 채로 닭의 사료로 사용할 경우 이를 먹은 닭의 배설물이 다시 소의 사료로 사용되어 광우병이 확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은 엄격한 정책과 검사를 통해야만 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육골분을 전 가축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최종 소비자가 쇠고기의 원산지를 알 수 있도록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식당에서도 고기의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고, 더 많은 소를 검사함으로써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이런 정책의 일환이다. 그렇지만 광우병의 근본 원인은 결국 인간의 육류 섭취의 급증이다. 육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오랫동안 동물을 먹고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지난 수천 년간 대부분의 사람은 고기가 아닌 곡물을 먹고 생존해왔다.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서 전 지구적으로 수백 억 마리의 가축을 키우고 죽이며, 그 가축을 먹이기 위해 엄청난 곡물을 경작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과잉 섭취한 고기가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라면, 이제 우리 식생활을 한번 근본적으로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홍성욱, 동아시아, 2008, 168-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