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질긴놈이 이긴다”…경향·한겨레 구독운동 ‘대확산’

강산21 2008. 7. 12. 15:45
“질긴놈이 이긴다”…경향·한겨레 구독운동 ‘대확산’
‘조중동 불매운동’에서 ‘대안언론 지원 운동’으로 진화
입력 :2008-07-12 14:10:00  
[데일리서프 민일성 기자] 시민들의 신문에 대한 적극적 소비자 운동이 온오프를 넘나들며 다양하게 퍼지고 있다. ‘절독 운동’, ‘광고주 불매운동’ 등 네거티브 뿐 아니라 대안언론에 의견광고 내기, 정기구독 독려 등 포지티브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특히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신문을 직접 많이 사서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무료 배포 운동’이나 식당 등 자신들이 자주 가는 업소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구독을 권하는 운동이 큰 호응을 얻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구호에 머물거나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 논의되며 진화하고 있다.

이 운동을 요약하면 조선일보를 비롯한 조중동 보수신문을 끊고 그 대안으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을 구독하자는 것이다.

▲ ‘포천 아줌마’로 통하는 누리꾼 ‘skdiwhdrn’의 경향·한겨레신문 무료 배포 자원봉사 체험기가 화제다. 신문을 나눠주면서 시민들과 나눈 이야기와 현장 사진 등을 다음 토론방에 올리고 있다. ⓒ ‘진실을 알리는 시민(agorian.org)’  
현재 인터넷포탈 다음의 토론광장 ‘아고라’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경향·한겨레신문 구독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ID ‘각시탈’(44·프리랜서 사진가)이 제안한 것으로 경향·한겨레신문 공동구매 무료배포 시민 계몽운동이다. 시민들이 보내온 성금으로 경향·한겨레신문을 구매한 뒤 자원봉사를 통해 각 지역에 정기적으로 배포하는 것.

5월 초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해온 ‘각시탈’은 촛불집회의 참혹한 현장 상황과는 달리 축소·왜곡되거나 아예 보도되지 않는 보수신문들의 보도행태에 분개해 ‘나홀로 시민운동’을 결심하게 된다. 5월 20일 아고라에 아이디어를 내고 준비 작업에 들어가 6월 초에 ‘진실을 알리는 시민(agorian.org)’ 사이트를 개설했다.

후원금과 자원봉사의 도움으로 6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무료 배포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경남의 창원·마산, 대구, 경기도의 이천·광명·포천 등에서 배포 운동을 하고 있는데 성금 뿐 아니라 자원봉사 신청자들이 나날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구의 경우 지난달 24일 1차 배포를 시작으로 1일, 8일까지 3차례 걸쳐 진행했다. 오는 17일 4차 배포에 나설 예정이다.

‘포천 아줌마’로 통하는 열성 여성의 자원봉사 체험기도 화제다. 경기도 포천의 누리꾼 ‘skdiwhdrn’는 지난 7일부터 오는 12일까지 5일간 무료배포 운동 자원봉사를 뛰고 있다. 학교 앞 문구점, 식당, 마을회관, PC방, 철물점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문점까지 돌며 시민들과 나눈 이야기와 현장 사진 등을 게시판에 올려 많은 누리꾼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각시탈’은 “외국에서 경향·한겨레신문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신문사와 논의해 돈이 들더라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대구에서도 경향·한겨레신문 무료 배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 대구 경북, 아고라인의 모임  
또한 그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한 분은 1만불(약 800만원)을 보내주겠다고 알려왔다. 소액 참여를 희망하는 해외 동포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송금 비용 때문에 신문사와 해결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업소 대상 ‘공격적인 정기구독 운동’도 큰 호응

김회수(ID ‘와우커뮤니케이션’·40·사업가)씨는 ‘정기구독 배가’에 초점을 맞춰 무료배포 운동을 하고 있다. 때문에 특정 다수에게 무료배포하기 보다는 식당·미용실 등 업소를 지속적으로 방문, 무료 배포에서 정기구독으로 견인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김회수씨가 이같이 ‘공격적인 정기구독 운동’을 펼치게 된 계기는 지난달 23일 여의도 KBS 본관 앞 시위 중 발생한 보수단체의 ‘50대 여인 각목사건’ 때문이다.

김 씨는 “새벽까지 현장에 있으면서 상황을 쭉 다 지켜봤는데 후에 조중동에 왜곡 보도된 것을 보고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마음의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방법으로 김 씨는 ‘조중동 폐간’ 같이 구호에 머물거나 ‘의견 광고’ 같은 일회적인 방법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질긴’ 방법을 찾게 된 것.

“신문에는 신문이 맞서야 한다. 조중동과 싸울 수 있도록 경향·한겨레신문의 힘을 키워줘야 한다. 그 방법은 많은 시민들이 정당한 요금을 내고 많이 보도록 하는 것이다”

김 씨는 ‘정기 구독 배가 운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지난달 29일 아고라 토론방에 올리고 3차에 걸친 의견 수렴을 통해 세부안을 마련, 15일부터 여의도의 식당과 미용실을 중심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식당·미용실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로 한 부만 배치해놔도 효과가 크다.

▲ ⓒ 대구 경북, 아고라인의 모임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각에 맞춰 오후 2시부터 한겨레신문 20부, 경향신문 10부로 총 30부를 돌릴 예정이다. 김 씨는 단순히 무료 신문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정기 구독’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방문, 공격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지역별 모임과 토론 등을 진행하고 회의실 역할도 할 수 있는 카페도 개설했다.

김 씨는 “수많은 시민들이 열정과 희망을 갖고 피와 땀 같은 성금을 보내주시는데 일회용으로 만들 수 없고 우리의 대안언론을 무가지로 전락시킬 수 없다”며 “지금은 혼자 먼저 시작해 모범사례를 만든 후, 자원봉사자들이 지역별로 활동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5회가 무료 공급의 끝이다. 그래도 업소가 정기구독에 응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설득에 나설 것이다. 지금은 말해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언론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대부분 시민운동의 경험이 없거나 미비한 ‘순수 시민’들이다. 오히려 시민단체에 대해 “홍보를 위해 촛불집회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 얘기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2003년부터 대언언론 운동을 해왔던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시민들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2003년 대안언론 운동은 상황도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회상한 뒤 “시민들의 역량이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성숙할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감탄했다. 그는 “지난 10년 시민들이 학습을 엄청 잘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