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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리(Billary) - 진보의 탈을 뒤집어쓴 보수

강산21 2008. 6. 25. 15:33
 

빌러리(Billary) - 진보의 탈을 뒤집어쓴 보수


1992년 빌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유주의와 진보, 중도 노선 진영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우울한 나날들, 냉전 지상주의, 레이건의 개혁 실패... 이제 이 모든 것과 우익의 정치는 끝이 났다며 환호했다.


생각해보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 당시까지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있었던가. 빌 클린턴,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가 전직 대통령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고 그의 부인 힐러리가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나선 지금, 모든 것은 여전히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힐러리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클린턴 부부의 행보에 대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혹은 그보다 더 나쁜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들 부부를 백악관에 입성시킨 대가를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부시 부자나 레이건과 비교한다면 당연히 빌러리(빌 클린턴과 힐러리를 합쳐서 부르는 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두 사람은 명석하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보적이며, 빌 클린턴의 경우 뛰어난 정치 기술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재직 시절, 별다른 업적도 없이 툭하면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비겁하고 이념적으로도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클린턴 가문의 시대가 다시 열린다 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실패한, 혹은 실패에 가까운 외교 정책들과 무능한 국정처리, 기업에 대한 특혜, 부적격자 중용, 의회와 국방부를 공화당에 장악 당한 일, 또한 소말리아의 혼란, 보스니아 사태의 우유부단한 대응, 르완다 대량학살을 수수방관한 일, 노동,환경 기준과 국가 간의 공정성을 약화시킨 자유무역협정, 이란 문제에서 이스라엘 리쿠드 당의 사주를 받은 미국 내 로비 단체의 로비에 넘어간 일, 이라크에 대한 혹독한 경제 제재, 대인 지뢰 금지 조약과 국제 형사재판소, 교토의정서 등에 대한 회피, 핵무기 감축에 대한 미온적 태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으뜸가는 실패는 냉전 직후의 세계질서를 재편할 유일한 역사적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지위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위상은 과거에 단 한번,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경험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루스벨트와 트루먼 대통령 행정부의 '현명한 사람들'은 비전을 가지고 주어진 기회를 기민하게 활용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유엔과 세계은행, 마셜 플랜 등이었다. 이 기구들의 목적과 설립의도는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열정과 기회 포착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클린턴의 백악관에서는 그런 열정과 능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이른바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자 구 시대의 전선을 재구축하고, 해외 원조나 개발 정책을 중단했으며, 군사동맹을 추진하고, 반유엔 정서에 동조했다. 또한 외교 문제에서 언제나 이익만을 취하려고 했다.


클린턴이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민주당은 과거 자신들이 소극적이나마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계속해서 실망만 안겨 주자 그들은 점차 중도 노선으로 기울었고, 심지어 기독 우익 성향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것이 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잇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클린턴은 국방부가 '새로운 전쟁들'에 서투르게 대처하고 과거의 행태를 답습함에도 그에 맞서지않았다. 강력하게 부상하는 유럽과의 관계에서는 유럽 통합 노선에 동조하고 나토확대를 주장했는데, 이것은 근거도 실익도 없는, '새 민주당'의 책략이었다. '보리스 옐친 구하기'가 러시아와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 숫자를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와의 관계는 자유 무역 등 사소한 것에 국한되었고 아프리카는 잊혔다. 아시아 또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났다가 금융 위기로 인해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아시아 금융 위기는 다행히 세계적인 불황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한국의 북핵 위기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


국제문제와 관련해 클린턴이 남긴 말이나 제안, 인상적인 순간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다. 1995년(건강보험 개혁에 실패한 해) 이후 그는 공화당 의회에 포위되어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공화당 출신인 레이건은 8년간이나 민주당 의회를 겪었어도 주도권을 잃지 않았었다. 클린턴은 또한 섹스 스캔들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이니만큼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클린턴 행정부 8년은 '잃어버린 8년'이었다. 그 같은 평가를 내릴만한 대통령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클린턴은 그들이 갖지 못한 재능과 지적 능력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세계사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확고한 원칙이 없이 어리석게도 냉전적 사고방식에 빠져있던 그는 그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보냈다. 레이건 독트린의 실패나 조지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과는 달리, 클린턴은 적어도 미국을 재앙으로 몰아넣지는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와 아이디어가 있어야 실수도 잇는 법이다. 그는 르완다, 보스니아, 에이즈, 무자헤딘, 지구 기후 변화 등 잇단 재난에 과감하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확고한원칙과 소신, 원대한 비전 없이 정치 기술에만 능한 국정 운영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대통령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 존 터먼, 재인, 2008, 188-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