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보통선거

 

최초의 보통선거

보통선거가 최초로 시행된 것은 언제인가? 다 아시다시피 1948년 5.10선거지요.

5.10선거 이전에 보통선거가 없었을까요? 북에서 1947년 11월 3일에 있었던 선거를 보통선거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선거는 서방 진영에서 얘기하는 보통선거하고는 다른 점이 있어요. 예컨대 후보자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북민전)에서 일괄적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들이 볼 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각계각층에 골고루 분배해서 지명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후보자가 마음대로 출마할 수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요.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가운데 '흑백투표'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 같은데, 북민전에서 지정한 후보한테 찬성투표를 할 때는 흰 투표함인가요? 그쪽에 투표하도록 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투표함에다가 투표를 하게 했기 때문에 그것을 흑백투표라고 불렀어요. 보통선거의 가장 큰 내용 중 하나가 비밀투표입니다. 비밀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그건 자유투표라고 할 수 없습니다.

1960년 3.15부정선거에서 자유당은 마을마다 3인조, 7인조, 9인조를 조직해 투표하게 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억지를 부렸어요.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죠. 투표장에 갈 때 자기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줄을 지어서 가고, 투표할 때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통선거 취지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에서 먼저 보통선거 형태의 선거가 치러지긴 했지만 그것을 보통선거라고 보기에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면이 있습니다.

남쪽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투표가 있긴 있었어요. 1946년이지요. 미군정에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을 뽑는 선거로, 10월 17일부터 22일 사이에 치러졌는데, 똑같은 날짜에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 투표를 했어요. 그때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이 투표권이 있는지도 몰랐고, 언제 투표하러 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그 선거는 다른 점에서도 보통선거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리, 동 단위에서부터 면, 군, 도 단위에 이르기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한 간접선거였어요. 그래서 이승만이나 한민당을 지지하는 극우성향의 사람들이 당선되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초기 단계에서 탈락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선거를 언제 처음 했는지 아는 분 있으세요? 일제 때 우리나라에는 한번도 중앙의회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앙의회 의원 선거는 없었습니다.

인도는 이미 1919년 인도통치법에서 입법권 및 예산심의권을 갖는 입법의회를 설치했습니다. 이처럼 인도나 필리핀처럼 상당히 큰 권한을 갖는 중앙의회가 존재하는가 하면 인도차이나처럼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고 그랬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어쨌든 간에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의회가 존재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번도 그런의회가 없었어요. 일제는 1910년대에 무단통치라는 아주 고약한 통치를 했지요. 무단통치 하에서는 세 사람 이상이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었어요. 3.1운동 이후 문화정치라는 형태로 통치방식을 바꾸었지만, 그때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기본권이 심각한 제한을 받았고, 1930년대 초 만주사변이 나면서,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는 전시체제하의 암흑시대로 넘어가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도 우리나라는 다른나라의 식민체제와 대단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 인도나 동남아시아는 1910년대보다 1920년대가, 1920년대보다는 1930년대가 민주주의가 더 확대되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였어요.

일제강점기에 선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20년에 지방제도를 개혁해서 도평의회, 부협의회, 지정면협의회가 있었는데, 도평의회 의원은 임명했고, 협의회 의원은 선거를 했습니다. 하지만 선거권은 일정한 세금을 납부한 25세 이상의 남자에 한정했어요. 1920년 당시 부와 지정면의 선거권자는 일본인 7,650명, 한국인 6,346명으로 일본인 선거권자가 더 많았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나라에서 보통선거가 최초로 실시된 것은 바로1948년 5.10선거입니다.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서중석, 역사비평사, 2008, 2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