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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과 대륙인 사이의 애증

강산21 2008. 6. 16. 15:20
 

홍콩인과 대륙인 사이의 애증


홍콩인은 1980년대에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대륙인을 철저히 무시하고 차별했다. 홍콩사람들은 대륙인을 재난으로 여겼다. 대개는 불법으로 들어온 대륙인들을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이자, 홍콩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약탈자라고 여겼다. 홍콩의 혜택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몰려든 탐욕스러운 무리이자 하등인간으로 여긴 것인데, 무엇보다도 그들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홍콩사람들에게는 '우리 홍콩인, 그들 대륙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가운데 공공연하게 대륙인을 멸시하고 차별했다. 당시 홍콩에서 제작된 많은 영화에서 대륙 출신들이 한결같이 범죄자로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홍콩사람들은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서구인과 만날 때 홍콩인들은 중국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자기정체성을 서구에 내보인다. 하지만 대륙사람들과 만나면 그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인, 영국인으로 자처한다. 대륙사람들을 대할 때면 영국의 입장에서, 중국 대륙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우월한 서구 선진국의 입장에서 사회주의 중국대륙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1967년 홍콩 대학생들이 지배자 영국에 맞서 반영 폭동을 일으킬 무렵에는 자신은 중국인이며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데 1970년 이후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홍콩에서 나고 자란 세대가 늘어가면서 자신을 홍콩인으로 규정하는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더구나 이 무렵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진행되면서, 자신을 대륙에서 분리하여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대륙인을 대할 때에도 민족적 차원보다는 정치적 차원의 정체성을 앞세우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 중국대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초로 하여 '낙후되고 자유가 없고 민주화되지 않은 중국 본토 대(vs) 발전하고 자유롭고 민주화된 홍콩'이라는 이원대립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 것이다. 사실, 홍콩에서도 영국이 통치하던 기간에 민주화가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은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에야 민주제를 실시했다. 짐을 중국에 떠넘기고 가버린 셈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런 사실이 아니라 홍콩인이 그렇게 상상하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으로 고통 당하던 중국 근대사의 비극이 한 세기가 지난 뒤에야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홍콩 반환은 중국인의 정체성으로라면 마땅히 경축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반환에 대해 두려워하고 초조해했다. 그 중 40 만 명은 아예 홍콩을 떠났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계속 홍콩에 적용할지 확신할 수 없었고, 자신들이 중국인, 특히 중국 대륙정부의 국민이 되는 것을 꺼린 때문이다. 중국인으로서보다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이욱연, 창비, 2008, 124-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