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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빨간 고무장갑을 끼며 -`얼치기 페미니스트`의 고백

강산21 2008. 6. 11. 18:58

빨간 고무장갑을 끼며

-'얼치기 페미니스트'의 고백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이지만 남녀평등 수준은 여전히 '저개발' 상태이다. 정치인, 장관 및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중 여성의 수는 미미하고, 사기업 내에서도 여성 회사원의 임원 승진은 '유리 천장'이 가로막고 있다. 초중고 교사의 약 70%는 여성이지만 교장, 교감, 교육감, 교육위원 중 여성의 비율은 현격히 떨어진다. 그리고 고용 시 남성을 선호하고, 같은 노동을 해도 남성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알파 걸' 또는 '골드 미스' 등 고소득 전문직 여성의 진출이 종종 언론지상을 장식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여성 노동자 중 거의 70%에 육박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며, 여성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약 60%에 불과하다. 또한 국가나 직장의 직위에 관심이 있는 여성은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 자기 주장이 분명한 여성이나 능력있는 여성은 부담스러운 파트너라는 관념이 퍼져 있다.


한편 화폐 속의 인물도 모두 남성이고, 동상으로 기념하는 사람도 대부분 남성이다. 위인으로 받들어지는 여성은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이다. 바람피우는 남성은 '영웅호색'이라는 말로 은근슬쩍 정당화되지만, 바람피우는 여성은 차가운 비판의 시선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낙태를 통해 죽어가는 태아의 다수는여성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르면, 관비에게 산기가 보이면 한 달 휴가, 출산 후에는 산모에게 50일, 그 남편에게 15일의 휴가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21세기를 사는 한국 여성이 봉건 시대의 관비보다 못한 대울르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녀평등의 문제는 단지 우리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다. 남녀평등이 상당히 이루어져 있는 서구 여러 나라의 경우도 조금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여성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사실 서구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참정권을 얻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 프랑스는 1944년, 스위스는 1944년에 이르러서야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졌다.


우리나라 경제가 '압축성장'했듯이 우리의 여성인권도 '압축성장'해왔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법과 제도의 차원에서는 남녀평등이 상당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문화와 관행 차원으로 눈을 돌려보면 남성중심주의 매커니즘은 아직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내 딸아이가 이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기의뜻을 펼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가정 내 평등에 대해 말해 보자. 미국 유학 시절 중국인 친구 집을 찾았을 때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남편이 식사를 준비하고, 아내가 손님을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 영향이 강한 동북아시아권 나라여서 생활문화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 집에서 장보기와 식사준비는 거의 시아버지 몫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놀라기도 했다.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 아내에게 공부를 강력히 권한 덕분에 수 년 째 방학 동안에는 가사와 육아 등 집안일을 혼자서 떠맡아야 했다. 고교 졸업 때까지 부엌 출입을 엄금하는 분위기에서 살아온 '경상도 남성'인 내가 일으킨 '자초위난'이지만 집안 일을 전담할 때 맨 처음 스쳤던 생각은 '내가 이 시간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였다. 또한 나의 아내가 '전업주부'였다면 내가 연구와 사회활동을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몽상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집안 일을 아내에게 전담시키고 싶은 욕망이 사라지지 않으니 나는 여전히 '무늬만 페미니스트'인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숭고한 목표도 그것을 실현하는 세세한 과정에서 힘이 들면 말과 몸이 따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을 논하는 데는 능숙하면서도 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은 어려우니, 나는 '얼치기 책상물림'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집안일을 하기 위해 빨간 고무장갑을 끼면서 나는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은 제도적, 거시적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미시적 차원에서, 생활 속에서, 그리고 어떤 큰 목표를 세운 후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 자기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사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실행해야만 역사는 단지 'His + Story'로 축소, 왜곡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박노해 시인의 시 '이불을 꿰매면서'를 한번 더 읽어보아야겠다.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성사, 2008, 230-233.

출처 : 광명한길교회
글쓴이 : 선한이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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