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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북`하며 `비북`하자

강산21 2008. 6. 10. 14:46

'연북'하며 '비북'하자


1945년 해방 후부터 1950년 이전까지 남쪽에서는 '대구폭동', '여순반란' 등 사실상의 내전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1948년 남북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수립된 후 1950년에 북한은 전격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스탈린의 세계혁명 전략과 김일성의 무력통일 노선이 결합한 군사주의적 모험이었다. 이후 중국과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광란이 전개된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에서 남북은 이념적 적대 외에 서로를 원수로 볼 이유를 갖게 되었다. 이 모든 비극은 해방 이후 '좌우합작'의 통일된 나라를 위해 노력한 여운형,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의 정치세력이 암살되거나 정치적으로 무력해졌을 때 그 실마리가 만들어졌다.


1948년 이후 남북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서로를 '북한 괴뢰도당', '미제의 꼭두각시' 등으로 불러왔다. 과거 북은 남조선 해방을 추구하고 남은 멸공과 흡수통일을 주장했지만, 이제 평화공존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데 대해서는 남북 사이에, 그리고 남한 내부에서도 다수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한반도에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남북은 '석기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몽상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년에 국군, 인민군, 미군ㅇ 동막골에 모여 서로 적대하다가 점점 몸과 마음의 무장을 해제하면서 화해하고, 미군의 마을 폭격이 다가오자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판타지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동막골을 만들어내는 것은 공상을 통해서나마 '미래의 동막골'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수십 년이 흘러 구소련의 붕괴로 국제적 차원의 냉전은 종식되었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다. '김일성주의'가 통일한국의 지도이념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북한을 끌어안아 회유하고 압박하며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남한 지도층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남북 모두에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목청을 높이는 강경파가 언제나 존재하겠지만, 남북의 공존과 상호이익을 추구하면서 점진적, 단계적 통일을 모색하는 것만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도라고 확신한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평화기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2002년 6월 북한 해군의 기습공격으로 우리 해군이 인적, 물적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북한 해군은 자신들이 1999년 6월 연평도에서 패퇴한 것을 보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남한 해군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진하고, 남북경제협력은 바로 중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앞세우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앞으로도 이런 돌발 사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에 강력히 비판, 대응하는 동시에 북한을 평화의 틀 내로 묶어 세어야 한다.


한편 북한의 핵문제, 인권문제 등을 들어 평화공존체제의 안착을 반대하며 북한정권 전복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 핵이나 인권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 비판이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관계를 냉전적 대결구도로 되돌리려는 운동으로 나아간다면 문제가 된다. 그런 운동은 오히려 북핵문제나 인권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정권의 문제점을 비판하더라도 평화공존을 위한 정책의 기조를 유지할 때 비로소 북한의 '체제 진화'(regime evolution)도 가능할 것이다.


통일은 단순히 남북한은 단일민족이므로 단일한 정치공동체를 세워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당위에서 도출되는 과제가 아니다. 남북한 사회의 제대로 된 발전을 방해하는 핵심적 장애물인 분단을 제거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


요컨대 우리는 자신만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맹목적인 '반북'이나 '종북'을 할 것이 아니라, 평화와 교류를 위해서 '연북'(聯北)하면서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비북'해야 한다.


<성찰하는 진보> 조국, 지성사, 2008, 154-156.

출처 : 광명한길교회
글쓴이 : 선한이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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