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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개혁의 개념

강산21 2008. 6. 17. 16:47
 

민주개혁의 개념


민주개혁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다시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언론학계에서 가장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 개혁입니다. 개혁과 보수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맞는가는 네 가지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진보, 보수를 변화를 지지하느냐 변화에 저항하느냐는 변화에 대한 태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1987년 말 소련과 동독의 몰락 과정에서 전통적인 기준으로 볼 때 '좌파'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을 보수파로 부른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진보, 보수에 대한 이런 인식은 다양한 정치세력의 현실과 변화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장점이었지만 절대적, 이념적 내용과는 무관하게 정세적 인식만을 절대화하는 결정적인 결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진보와 보수를 하나의 연속체 상에서 상대적인 정도의 차이로 성층론인 인식입니다. 2002년 대선당시 중앙일보가 한국정당학회의 도움을 받아 실시한 국회의원과 대선 후보의 이념성향 조사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첫 번째와 비교해 단순한 변화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이념적 내용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에 따르면 보수로 보아야 할 무쏠리니도 히틀러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진보라고 평가되는 등 모든 것이 상대화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절대적인 내용을 기준으로 할 때 보수 양당제로 보아야 할 미국의 정당도, 이런시각에 따르면 민주당이 진보로 규정됨으로써 미국정치의 특수성이 부각되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보수정당 일변도인 한국정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집권 극우 세력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보수야당을 진보라고 보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지요.


세번째는 이념적 내용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으로서 자유주의처럼 이것에 우호적인 것이 보수고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처럼 이것에 비판적인 것이 진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앞에서 본 두 가지의 문제점을 극복한 어느 정도 바람직한 개념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역시 사회적 균열의 다층화, 그리고 포스트주의가 주목하는 '주체의 다원주의'와 관련했을 때 진보와 보수의 문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에 대한 입장을 기준으로 한 진보가 젠더 문제와 관련해 항상 진보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진보의 문제를 단순히 전통적인 계급론적 시각에서 반자본주의 내지 반시장경제로 환원하는 일원론적이고 환원론적인 시각은 잘못입니다.


네 번째는 해체주의, 포스트적인 경향입니다. 얼마 전에 TV토론에 나가서 같은 토론자인 유창선 박사로부터 "우리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하여 관용적 입장으로 대해주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층적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사회적 소수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남자이고 대학교수이고 고학력자라는 면에서는 다수자이긴 하지만 키가 커서 맞는 양복이 없어서 소수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웃음) 진보, 보수도 이렇게 나누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노동문제에 있어서는 진보적이지만 젠더문제에서는 남성이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난 대선 과정에 한 여성운동가가 "가장 진보적인 남성보다도 가장 보수적인 여성이 더 진보적이다."라며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바로 이 같은 해체주의적 경향인 것입니다.


저는 이 네 가지 기준 중 세 번째가 중심에 있으면서 네 번째를 결합시키는 이해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진보, 보수의 문제를 한국 정치와 관련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두 개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해야 합니다.


우선 보수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이해해 자신들을 보수로 이해하고 김대중 대통령 등 보수 야당세력을 진보라고 비판해온 군사독재세력의 인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력의 인식과 달리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적 입장을 의미하며, 이런 점에서 한국정치에서 진정한 보수세력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운동 출신 야당세력이고 군사독재세력은 수구에 불과합니다. 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개혁이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진보적 내용이 아니라, 극우로 오해되었던 한국의 '보수를 자유민주주의에 근접시켜 정상적인 보수로 만들려는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개혁은 보수와 대립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즉 개혁이 보수였고 이것에 대립되는 것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였습니다.


<21세기 첫 십년의 한국> 박상한 엮음, 철수와영희, 59-62.(손호철 강의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