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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욕먹는다” 피켓 항의

강산21 2008. 6. 11. 03:03

“당신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욕먹는다” 피켓 항의

기사입력 2008-06-11 02:36 
 
[한겨레]  그동안 저항 시민들의 메카였던 서울 시청앞 광장은 10일 오후엔 보수 단체와 일부 기독교인 모임의 차지였다. ‘6·10 100만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70만 서울 시민들은 이들에게 광장을 내어준 채 광화문 네거리를 중심으로 행사를 이어갔다. 간혹 촛불 시민들이 보수단체 회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뉴라이트 전국연합·국민행동본부 등 보수단체의 ‘법 질서수호·자유무역협정(FTA)비준 촉구 국민대회’는 7천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하다 ‘일몰 시간 뒤에는 현행법상 집회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저녁 6시께 막을 내렸다. 그리고 곧이어 기독교 신자 1천여명이 광장 한 구석에 모여 ‘구국 기도회’를 열었다. ‘국가연합기도모임’ 소속인 이들은 새벽 늦게까지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회를 진행했다. 우뚝 솟은 십자가와 함께 태극기가 펄럭였다. 이명박 안티카페 회원 50여명이 주위를 돌며 “기도회를 마쳐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오종훈(30)씨는 이날 밤 8시께 부인과 함께 100만 촛불 대행진에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본 뒤 곧바로 피켓을 만들었다. 그는 피켓에 ‘당신들 광신도들 때문에 기독교 전체가 욕먹는다’는 문구를 적어넣고 기도회 모임 한 쪽에 서 있었다. 오씨는 사견임을 전제로 “이들은 거대교회 보수 목사들의 부적절한 설교를 고스란히 믿고서 나왔을 것”이라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절대로 이런 모임에 동원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구국 기도회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한 채 진행되는 것이라는 주최 쪽의 설명과 달리 기도회에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해야 한다”, “빨갱이를 몰아내자”는 등의 정치적 구호가 터져 나왔다.

 오씨는 “성경을 보면, ‘거짓말 하지 마라’,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말씀을 전혀 지키지 않고 있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씨는 밤 11시까지 3시간여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지나는 시민들은 “힘 내세요, 화이팅”, “정말 잘하십니다”라고 오씨를 격려했다. 일부 시민들은 음료수나 초콜렛 등을 건네기도 했다. 오씨는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사실 국가를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이런 순수한 마음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대형교회 보수목사들이 정말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기독교 신자들은 오씨가 떠난 자정 이후에도 수백여명이 남아 찬송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기도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열정적인 몸짓으로 시청앞 광장을 달궜지만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