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교육은 뒷전인 교원 승진제도

강산21 2008. 5. 14. 15:18
 

교육은 뒷전인 교원 승진제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자신의 기득권을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제도의 실행은 과거의 제도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과거의 제도 속에서 이익을 보고있던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는 법이다.


<제3의 침팬지>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라는 책에 재미난 사례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유명한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쿼티(QWERTY) 자판기는 영어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타자기나 컴퓨터의 자판기로, 자판기 윗줄 왼쪽의 여섯 알파벳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컨퓨터의 자판기도 살펴보니 한글 문자 ㅂ, ㅈ, ㄷ, ㄱ, ㅅ, ㅛ 가 있는 곳에 영어 알파벳 Q, W, E, R, T, Y가 각각 자리 잡고 있으니 이 자판도 결국은 쿼티 자판기이다.


이 같은 자판 배열은 1873년에 역공학(逆工學)의 산물로 태어났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온갖 수단을 다 발휘하여 타이핑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들을 자판의 각 줄에 두루 흩어놓았고 주로 왼쪽에 몰았다. 따라서 오른손 잡이들이 사용하기에 매우 불편하다. 이렇게 일견 비생산적인 듯한 자판을 설계한 이유는 1873년 당시의 타자기는 인접한 글자들을 연달아 빠르게 치면 글쇠들이 엉켜버렸으므로 타자수들의 타이밍 속도를 늦추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타자기가 개선되어 이 엉키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1932년에 능률적으로 다시 배열된 자판을 시험해본 결과 타이핑 속도는 두 배나 빨라지고 타이핑에 드는 힘은 95%나 감소되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쿼티 자판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뒤였다.  그 동안 쿼티 자판을 이용하던 타자수, 타자 교사, 타자기와 컴퓨터의 제조업자 및 판매원 등의 기득권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판이 능률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계속 좌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 학교교육을 망치고 있는 사무 행정을 중심으로 한 학교 제도와 교원 승진 제도는 무엇을 위해서 고안된 것일까? 교사들이 열정과 창의력을 북돋워 학생들을 잘 교육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학교교육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고, 교사와 학생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일까? 지금의 학교 업무와 승진 제도의 골격이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보완되고 강화된 것을 고려할 때, 학생 교육을 잘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감독과 통제를 위해 고안된 것이 분명하다.


해방된 지 몇 년이 흘렀는가? 이제는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의 시대가 오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학교는, 교육은 뒷전이고 여전히 통제와 행정이 우선이다.


나는 이러한 낡은 제도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고 더 많은 이익을 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자주 생각해 본다. 일선에서 학생들과 뒹굴며 교육하는 교사들인가? 아니면 교육청, 교육부의 행정관료들인가? 혹시 후자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우리 나라의 교육이 희생 당하는 것 아닌가?


지금의 낡은 제도와 문화 속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직 교육에 헌신하고자 노력하고 능력을 개발하는 교사들인가? 아니면 교육보다는 사무 행정 업무에 더 정성을 들이고, 승진 점수 따기에 목을 매는 교사들인가? 혹시 후자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대가로 우리 나라의 교육이 죽어가고 학생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학교 개조론> 이기정, 미래M&B, 2007, 136-138.